이곳은 여전히 공사중입니다.
아니 어쩌면 언제나 공사중일 것입니다.



그동안 이곳저곳에 조금씩 써왔던 저의 글들을 한 곳으로 모으고 있습니다.
쓴 곳도 다르고 쓴 시기도 달라서
각 글마다 어투도 다르고
여러가지 생각들이 담겨 있습니다.

날짜는 그 글을 처음 올렸던 곳에 맞추어 재구성하고 있어요.

이 곳은 피겨 스케이팅과 언어가 만나는 곳입니다.

미끄러지듯 잡히지 않는 스케이팅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이
조금씩 엇나가지만 그래서 더 가까워지게 하는 언어를 통해
나누어지고 떠다니는
따뜻한 링크이자 대기실이 될 것입니다.

누구에겐가 소유되어 있는
언어는 이미 비석의 문구일 뿐이며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스케이트는 이미 박물관의 전시물일 뿐입니다.

스케이트가 얼음 위를 사뿐히 미끄러지듯이
언어도 사람들 사이를 자유롭게  떠다녀야 하니까요.

옛날 글들과 뒤죽박죽 섞여 있지만,
마음에 드는 것부터 읽어주세요.

그러다보면, 어느새 새로운 글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있을거에요.

토픽은 멈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점프를 하기 위해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스파이럴9509-

새로운 아이스댄싱조

클라우디아 뮬러와 장원일 선수가 나오는

윤일상의 뮤직비디오 "애상 + I'm Missing You" 뮤직 비디오를 보다가

 

갑자기 롯데월드 아이스 링크장과

내가 마지막으로 스케이트를 탔던 날이 떠올랐다.


(출처: http://asummerinseoul.blogspot.com/2010/08/final-official-weekend.html, A Summer in Seoul)

 

피겨팬들에게

롯데월드 아이스 링크는


전용링크 하나 없어 놀이공원에서 새벽에 연습해야 했던

김연아 선수가 처해있던 어려운 연습환경과


아이스 쇼 직전 일어난 목동 아이스링크 화재 이후,

어른들은 숨어 버리고, 아무런 잘못이 없는 이 자그마한 소녀가 사과하고,

대체 공연을 해야했던


김연아 선수가 겪어 왔던 역경과

그것을 이겨낸 가슴아프지만 자랑스런 공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에게도 롯데월드는 피겨에 관한 개인적인 여러가지 기억들이 있는 곳이다.

롯데월드 아이스 링크에서 나는 처음으로 피겨 스케이트를 신어봤다.

보통 논밭을 얼린 야외 링크장에서는 스피드 스케이팅을 빌려탔었지만,

당시 흔하지 않던 실내 링크장인 롯데월드 링크 장은 언제나 사람으로 붐비었고,

링크에서는 속도가 덜나와 나름 안전하다고 생각한 피겨 스케이트만을 빌려줬다.


초등학교 때 부터 사생대회나 소풍이 끝나면 롯데월드에 갔고,

그 때마다 친구들과 피겨 스케이트를 빌려 스케이트를 타고는 했다.




정말 신기했던 것은, 링크장에 가면 말괄량이 여자애들도, 멋대가리 없는 남자애들도

다들 얼굴이 하얗게 빛나며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스 링크에 가면 항상 사람들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그 곳에서 마지막으로 스케이트를 탔던 것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소풍을 갔던 날이었다.

 

그날 토픽에 걸려서 넘어지기 전에도, (당시는 그게 토픽인줄도 몰랐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또 누군가의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이스 링크에서는 다들 하얗게 빛나는 것 같아."

 

결국 나의 마지막 활주는

희비극으로 끝났다.

신기하게도 갑자기 얼음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나한테 다가왔고,

정신을 차려보니, 링크에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내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친구들이 뭉개진 안경테를 들고 나를 링크 응급실로 데려다 줬다.

다행히 얼굴의 상처는 흩뿌려진 피에 비해서는 크지 않아서,

봉합을 할 필요는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상처를 보고 놀란 어머니에게

위로랍시고 나는 그렇게 말했다.

 

"스케이트를 타는데 갑자기 얼음이 다가왔어..."

 

많이 놀랐던 어머니는 어이없어 피식 웃음을 터뜨렸던 것 같다.

 

(출처: blog.naver.com/ssda1001)

 

그 후 대학에 와서 허리가 나빠지면서

더이상 스케이팅을 못타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때부터 동계올림픽이나 되어야 해주던

피겨 중계를 더 열심히 챙겨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제는 그 때의 상처는

다행히도 사라져 찾아볼 수 없지만,

 

그 곳에서 연습하던 어린 선수들의

(이제 와서 생각하니 가슴아픈) 거친 숨결과

 

스케이트를 처음 신고, 얼음을 지치던

사람들의 환하게 빛나던 미소는 여전히 기억속에 살아있다.

 

.....

 

언젠가는 그 링크에서 꼭 다시한번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 

 

나는 지금도 내가 넘어진 것이 아니라,

"얼음이 나에게 다가왔다"고 기억하고 있다. 

 




2011년 모스크바 피겨 세계선수권 여싱 프리 프로그램이
끝난 직후에 쓴 글입니다.

저는 아직도 2011 세계선수권 대회의 연아의
지젤과 오마쥬투코리아를 다시 보지 못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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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말하셨다.

피겨 스케이팅은 선진국의 스포츠라고...
도시마다 링크가 있는 나라의 선수들을 이길수 없다고...


그랬다...그리고 앞으로도 그럴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날
그녀가 우리에게 왔다.


일단 마음이 아프다.


어떻든,
올림픽이 끝나고 1년이 지났는데도
연아가 여전히  부담감이 많았던 것 같다.

자막에서 나이를 보다 깜짝 놀랐어.
그랬구나 연아가 20살이었구나...


조금 있으면 세부점수 분석도 올라오고,
채점이 얼마나 납득하기 어려운지 이야기도 나오겠지만,


우선
올림픽 때 연아가 퍼펙트한 경기를 하지 않았다면
“확실히” 금메달을 빼았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이상하게
연아가 경기할 때에는
한국의 “김연아”가 경기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안도미키나 아사다 마오가 경기할 때에는
안도미키와와 아사다 마오의 “일본”이 경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의미에서 소치 올림픽에 단체 경기가 생긴 것이라든가,
팀트로피 대회 같은 건
피겨 스케이팅 계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해.
(제국주의 시대에 열강들이 자기네들끼리 협상해서 식민지 나눠 먹듯이 말이지)
어이 없는 일이야…

억울하지…
하지만 어쩌겠어.
스포츠가 페어 플레이를 강조하고,
공정한 심판을 강조하는 것은
원래 그렇지 않다는 거거든.
세상이 공정하지 않듯이


하지만,
스포츠도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부쟎아?


억울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상황 자체가
한국에서는 개인들이 좀더 마음을 가다듬고
진정한 실력을 키울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는 거 같다.






그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공동체로서의 국가가
결국 개인과 떨어질 수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될테고…


아……
아쉽지...
하지만,

그 아쉬움과 억울함이 없었으면
올림픽 때의 그리고 오늘 보여준 연아의 그 아름다운 '작품' 들이
과연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시상식 장면을 보는데
갑자기 10년 전에 아버지하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어.
아버지는 수영매니아신데,
아버지의 바람은 올림픽까지도 아니고, 한국 선수가 세계대회 결선에 나가는
것이었어.
(아 물론 월드컵 축구 16강도 바람중에 있었지)

내 희망은 뭐였냐고?


(아 물론 월드컵 축구 16강이었고, 그리고)

피겨스케이팅에서
미셸콴, 이리나 슬루츠카야,  리핀스키 같은 선수와
단지 같은 조에서 워밍업하는 것이었어.


그리고..한국 피겨 선수 경기가 세계대회 중계에서 방송되는 거였지.
그 때는 올림픽은 되어야 해줄까
월드는 방송도 안해주는 경우도 많았고,
주변에는 피겨팬 조차 별로 없었어.
쇼트트랙 팬이라면 모를까…


올림픽만 되면 VHS 비디오 테이프로
페어, 아이스 댄싱, 남녀싱글
녹화해 놓고…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계속 돌려보고는 했었어.


아버지가 녹화해 놓은 수영테이프와
내가 녹화해 놓은 피겨 테이프에 라벨이 안 달려 있으면
서로 상대방 비디오 테이프를 잘못 플레이 하고는
한마디씩 했지.

“이게 뭐가 재미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사실 미셸콴, 이리나 슬루츠카야,  리핀스키는
거의 다른 차원에 사는 사람들이었지.





포디움? 
그런거 바라지도 않았어.

아버지는 그러셨어.

"수영과 스케이트는 선진국 스포츠"라고...
학교마다 수영장이 있고,
도시마다 링크가 있는 나라들 하고 대결할 수 없다고...

그리고는 덧붙이셨어.
이미 일본은 평영과 배영 등에서 세계적인 수영강국이라고...

이토 미도리가 피겨에서 메달을 딴 것도 나는 알고 있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어.

나도 아버지도 이사할 때마다
결선에 한국선수가 못 오를 것을 알면서도
수영과 피겨 비디오 테이프를 한번도 버린적이 없어.

10년이 지났어.


다들 알겠지만,

그동안

월드컵에서는 4강 한번, 16강에 한번 올랐고,


수영은 세계대회는 물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지.
올림픽에서 박태환이 수영 금메달을 딴날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렸어.
“아버지 정말 축하드려요.”


연아가 그동안 해온 것은?
우리가 더 잘알지







작년 여름,  오랜만에 집에 들러 옛날 테이프를 틀어보려고 했더니,
우리집 비디오 플레이어는 이미 고장나있었고,
DVD PLAYER 밖에 없더라고.


오늘?
아쉽지…
하지만,


미셸 콴이 다시 월드에 컴백했을 때
실수해서 3위했다고
미셸콴을 비난하거나 그녀의 위상이 깎이지는 않아.
단지 컴백해 준것이 고마울 뿐이지.


물론 내가 화나는 것은,
미셸콴이 놓친 세계대회의 우승자들처럼
이리나, 리핀스키 정도의 상대였으면 좋겠다는 거야.
그럼 깨끗이 축하해줄수 있을 것 같아.




"내가 금메달을 못 따면 이리나가 땄으면 좋겠다"는 것이
마냥 미셸콴이 쿨해서 그런걸까?
인정할만 하니까 그런거지
경쟁자이자 존경할 만한 동료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거야.


미셸콴에게 "러시아"라는 경쟁자가 아니라 이리나 슬루츠카야가 있었듯이,
그리고 이리나에게 "미국"이라는 경쟁자가 아니라 미셸이 있었듯이,


아무리 심판과 국적이 방해를 하더라도
연아에게도 이제는 "일본"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그런 경쟁자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오늘?
아쉽지…
하지만,


피겨스케이팅은 멘탈이라는 것도 중요해.
미셸 콴이 올림픽 우승을 했다면....
과연 세계 선수권을 5번 우승할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캐롤 헤이스가 5연속 우승하던 1950년대도 아니고,
(아 물론, 미셸의 국적이 미국이 아니면 불가능은 아니지만 훨씬 더 어려웠겠지)


연아는 이미 이룰 것을 다 이루었어.
무엇을 더 이루고 싶을까?



그래도 연아는 돌아왔고,
오늘 훌륭한 경기를
자신의 조국 한국에 헌정했어.


자막을 보고 깜짝놀랬어.
아 연아가 20살 밖에 안되었구나...


횽들은
특히 나처럼 언젠가 돌아보니 20살이 저 멀리 구석에서 나를 보고 있는 횽들은
인생에서 20살 소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





연아가 팬들 때문에 오히려
행복하게 스케이트를 탈 수 없다면,
그렇다면 나도 게시판 같은 데 글 안쓰고
아이스쇼도 안가고
조용히 있으려고 해...




그리고,
월드 출전권 등을 연아의 등에  올려놓지 말자.
앞으로 곽민정,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가
알아서 할 수 있을거야.
연아는 이미 충분히 했다.




그리고 연아가 컴피에 참가하면 참가하는 대로
아이스 쇼면 아이스 쇼 대로...
그 때마다
연아와 함께 즐겁게 호흡하면 돼...


언젠가
포스트 연아 세대들이 자라나고
피겨계에서 한국의 파워가 조금씩 달라지다보면
판정도  조금씩 우호적이 될거야.


그러다보면
어쩌다 아쉬운 판정에 순위가 밀릴 때,
국적발 돈발에 밀렸다고 생각하지 않고,
"심판이 능력부족인가보다...이런..쯔읏" 하고 싱긋 웃어줄 때가 오겠지.


그리고 그 때가 되면,


꼭 기억하자.


어쩌면 한국선수가 부당하게 점수 버프 폭풍을 받을 일이 있을지도 몰라.


그럴 때 마냥 좋아라 하지말고,
포디움에 우리 선수들 때문에 밀린 다른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주고,
그들의 눈물을 기억하자고.
그들이 어디에서 왔건, 피부색이 무엇이던간에…
관중만은 선수들의  편임을  느끼게 해주자고.

첸루, 수리아 보날리 그리고 김연아를 관중들이 만들어 준 것처럼.
그러기 위해 우리가 느꼈던 감정을 기억하자.




언제나 카메라와 박수는 항상 진정한 챔피언을 따라다녀...
횽들 알지?
오늘 시상식에서 카메라가 누구를 보여주려 했었는지.
어떤 선수가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는지.




진정한 관중들조차 사라진다면?
피겨는 아마 몇년 안에 동계올림픽에서조차 사라질지도 몰라.
아니 없어지는게  맞다고 봐.
한 때 올림픽에 있었지만 이제는 사라진 다른 많은 종목들처럼.


오늘?

아쉽지…


나님은 횽들과 달리 지금은 멀리 있어서
봄아이스쇼도 갈 수 없어.


하지만,
이번 여름에는 어쩌면 한국에 들어갈 수 있을꺼야.


그러면,
해야 할 일이 두가지 있어.
먼저 비디오 플레이어를 하나 사서
아버지하고
10년 전에 VHS 테이프에 녹화해 놓은
수영경기와 피겨스케이팅을 같이 보려고 해.


“아버지는 이게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어요? 뭐 그래도 박태환은 잘하더군요.”
“너도 여전하구나, 뭐 그래도 연아 경기는 훌륭하더라”




나머지 한가지는 뭐냐고?
올댓 섬머 예매지 뭐긴 뭐야.



횽들아
건강하고,
이번 여름 올댓 아이스 쇼에서 보자.



아 그리고 아직 대회 안 끝났어.
갈라 남았다.
"Bullet Proof"
연아의 모습 그 자체일거야.


2002년 올림픽 갈라에서
사라휴즈가 무슨 갈라 했는지 기억나는 사람있어?
피겨팬치고 미셸 콴의 Field of Gold를 기억 못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거야.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벌써 들리는 것 같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아 결국 고정닉을 박고야 말았다...

-스파이럴 -


PS. 1
82년 이후 이번 2011년 월드까지  20년 동안
여자싱글 포디움에 들었던 국가들이야.

미국(33)
러시아 (13- 소련포함)
일본 (13)
독일(8-동독,서독포함)
중국 (4-모두 첸루)
프랑스 (3-모두 수리아 보날리)
이탈리아 (3 – 모두 캐롤리나 코스트너)
핀란드 (1-라우라 레피스토)
오스트리아 (1- 클라우디아 크리스토픽-핀더)


그리고


한국 (5-모두 김연아)



PS 2.
최근 20년 동안  1년 컴피티션 공백후 내셔널  및 월드에만 출전했던 레전드들의 주요성적

미셸콴  (2004 : 동메달, 2005: 4위)
이리나 슬루츠카야 (2004: 9위)
첸루 (1997: 25위)


PS 3.
지금까지 자신이 출전한 모든 국제대회에서 포디움을 놓치지 않은 선수?
1960년이후

단 한명, 연아 밖에 없어.


페기 플레밍, 카타리나 비트, 미셸 콴도 이루지 못했던 기록이야.


마지막으로
작년 월드 프리때
김연아가 레전드가 되기 위해 longevity(오랜기간의 꾸준함)가  더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PJ Kwong이 여러 시청자의 의견을 읽어준 후  했던 말.


"그녀는 내게 이미 레전드다"





이 글은 모스크바 피겨 세계선수권 여싱 본선이 열리기 바로 전날인
2011년 4월 29일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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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벌써 1년도 더 되었네.

작년 2월은 내가 처음으로 미국에서 보낸 겨울이었어.


다들 알겠지만,

유학생활이란게 사실

참 외롭거든.


돈 안벌고 늦은 나이에 공부하면서,

복터진 투정이기는 하지만…


내가 제일 힘들었던 것은 역시 영어였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면

처음에는 좀 shy 한가(부끄러움을 많이 타나) 보다 생각하지만,

2번째 시간, 3번째 시간이 지나도 한마디도 안하면

그냥 바보 취급을 당해.


투명인간 (Invisible person)이 되는 거야.


그냥 내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

같이 수업을 들어도 잘 아는 척도 안하게 되지.

첫학기는 첫학기니까 하고 그냥 버텨도,

둘째 학기도 그러면 정말 참기 힘들겠더라고…

두번째 학기가 다시 시작되었고,

나는 내가 바보가 아님을 증명하려 사투를 벌였지.


첫시간 전날 밤에 잠도 안자고, 밤새 준비했지만,


결국 수업시간에 단어는 내 입 안에서만 맴돌았어.


무시를 당하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면

2008년 세계 선수권 대회 프리 "미스 사이공"을 보고, 

키스앤 크라이 존에서의 연아의 모습을 봤어.



연아에 비하면…

“이거 별거 아니쟎아? 그렇지?”


첫번째 발표를 위해 그날부터 며칠동안

밤을 세워가며 발표 대본을 만들고

통째로 다 외워갔지.


그리고

그 다음주 나는 처음으로 프레젠테이션에서

동료학생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어.

You did good job. I like your presentation.


어느새

밴쿠버 올림픽이 시작되고,

어느날 같은 클래스의 한국애들끼리

어제 쇼트경기를 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같은 클래스의 미국애가 이야기에 끼어들더라고,

수업이 시작된지 한달이 지났지만, 그 때가 처음이었어.

미국애가 이야기에 끼어든 것은.


딱 한마디 하더군

She was great!


프리는 기숙사에서 혼자 보기로 했어.

글쎄…왜 그랬을까






거쉰이 끝났을 때 연아의 얼굴이 줌인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눈물을 흘리며 TV를 바라보고 있었지.

한국에서 떠나서 처음으로 우는데, 눈물이 그치지 않더군.

그러고 나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더라.



다음날 Student Union에 갔더니 무료 신문 배포함에

USA Today 1면에 연아 사진이 걸려 있었어.

“Golden Grace on Ice.”




놀이공원에서 훈련하며

강대국 피겨 선수들 틈에서 여기까지 성취해온

그 자그마한 연아의 커다란 1면 사진을

학생식당에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씹으면서

계속 바라봤어.


사진기를 꺼내 찍으며

계속 되뇌었지.

“연아야 참 고맙다.”




쇼트가 끝난 후 이야기를 걸었던

그 미국친구가 다음주 나를 보고 먼저 인사를 하더군.


Congratulation. Last week must be so great for you!


그랬지, 대단한 한 주였어.


그 후에도 나는 여러번  프레젠테이션을 망쳤지만,

그 때마다 밴쿠버 프리 거쉰을 돌려보고는 했어.




이제 4학기 째,

이번 주에도 성공적인 프리젠테이션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수업이 끝나고

클래스 메이트들을 보면서 싱긋 웃을 수 있게 되었어.




그리고 이제 내일 아침에

드디어 1년 1개월 만에 연아가

“지젤” 그리고 “오마쥬 투 코리아”와 함께 돌아온다.


내일 그리고 모레,

연아가 아주 행복하게

스케이트를 탔으면 좋겠어.


-연아의 세계선수권 복귀를 하루 앞두고 스파이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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