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미국 동부 섹셔널 (지부 예선)에서 주니어 부문에서 1위를 하고 내셔널에 진출했지만, 미국 내셔널을 포기하고
슬로바키아로 국적을 바꿔 처음으로 주니어 그랑프리에 진출한 니콜 라지코바
끔찍한 부상을 이기고 다시 용감하게 1년만에
주니어 그랑프리에 돌아온 선수도 있었습니다.
지난 시즌 마지막 그랑프리에서 프리 경기 도중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도
이번 시즌 재활에 성공하여 다시 복귀한 커트니 힉스
스탠드 뒤 웜업 공간에는
선수들을 위한 격언들이 써 있었습니다.
웜업 중인 조슈아 페리스
우리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했구요.
변지현 선수 경기를 기다리는 변지현 선수 어머니와 이준형 선수
먼곳에서 와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하는
다른 분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 마르티네즈를 위해 국기를 펼쳐놓고 조용히 응원하는 중
핀란드 비타 팝 선수의 열렬한 응원단
거의 모든 미국 선수들을 위한 응원 문구를 준비해온 열혈 가족 피겨팬
키스 앤 크라이 존 위에 눈에 띄게 붙여놓은 손수 만든 배너
화동들의 스케이팅도 상쾌한 웃음을 주었구요.
화동 소년은 활력있는 스케이팅으로 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어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순식간에 인형을 정리하던 대회의 마스코트 화동 소녀 1, 2
그리고 동료 선수들의 경기를 응원하러 온
스케이터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준형 선수를 응원하러 온 변지현, 박소연
쇼트 경기를 일찍 마치고 동료 선수 응원을 위해 스탠드에 올라온 조슈아 페리스 그리고 안젤라 왕
이번 시즌부터 페어도 같이 겸하고 있는 스케이터 키리 바가, 레이크 플레시드에는 싱글로 참가
마지막 차례인 커트니 힉스를 응원하는 미국 피겨 선수단 모습
안젤라 왕과 키리 바가 그리고 크리스티 크랄 코치를 찾아보세요.
사라진 국가는 낡은 국기만 쓸쓸이 나부끼지만,
이제는 사라진 소련 국기와 유고 슬라비아 국기, 올림픽 센터 앞의 국기 게양대에는 1980년 레이크 플레시드 올림픽 당시의 참가국들의 국기가 그 당시 국기로 걸려있다.
전설적인 스케이터들은
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올림픽 센터 링크 복도에 걸려있는 세르게이 그린코프를 추모하는 팬들이 만든 액자
올림픽 여자 싱글 3연속 챔피언이 된 소냐 헤니의 의상과 소냐 헤니 인형. 소냐 헤니는 1932년 레이크 플레시드 올림픽에서 2번 째 금메달을 땄다.
소냐 헤니가 1953년 파리에서 열린 아이스 쇼에서 입었던 코스튬
1953년 3월 12일 미국 LA에서 열린 소냐 헤니의 아이스쇼 티켓
소냐 헤니의 사망전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원래는 레이크 플레시드가 동계 스포츠 타운이 아닌 여름 휴가 리조트 였으며,
올림픽을 통해 동계 스포츠의 메카로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보기에는 언제나 동계스포츠 강국이었을 것 같은 미국도
유럽의 동계스포츠 문화에 대한 동경심/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유럽의 스케이트들
1932년 레이크 플레시드 올림픽을 기점으로 피겨 스케이팅이 미국에서 더욱 인기가 있어지고, 실내에서 열리는 피겨 경기가 활성화되었다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실내 빙상장에서 열리는 경기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으나, 미국은 1932년 올림픽 전까지는 야외에서만 경기를 했다고 합니다. 1932년 레이크 플레시드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의 우승자는 모두 유럽 선수들이었습니다.
지금의 동계스포츠 강국을 만든
미국의 "첫 세대" (First Generation)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자그마한 전통이라도
너무나도 소중히 아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국 뉴욕주 시라큐스에서 1861년에 사용된 여자용 스케이트
1932년 레이크 플레시드 올림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2관왕이 된존 셰아의 유니폼과 스케이트
미국 피겨 스케이팅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땄으며 더블악셀을 처음으로 시도한 것으로 유명한 딕 버튼 선수가 생 모리츠 올림픽 입장식에서 입업던 대표팀 단복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미국의 역대 입장식 선수단복들
1980년 레이크 플레시드 올림픽 미국대표팀 유니폼
당시 무적이던 준프로 소련 아이스 하키팀을 대학생으로 구성된 미국 선수들이 격파한 "은반위의 기적" (Miracle on ICE)이 벌어진
1980 레이크 플레시드 올림픽 센터 아이스하키 경기장의 골대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보관해 놓은 "미라클 온 아이스" 당시의 관중석 의자
엔들리스 테이프로 계속 해서 틀어주는 소련과 미국팀의 경기 화면
올림픽 센터 링크의 이름은 당시 미국 하키팀 감독의 이름을 따서 "1980 Rink : 허브 브룩스 아레나"로 이름을 바꿨다.
입구 계단에서 보이는 미라클 온 아이스 사진
두 번의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경기장을 보면서
6년 후의 평창의 함성을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겨울에는 옥외 빙상장으로 이용되는 Oval. 제가 묵었던 숙소에서 알게된 캐나다에서 온 노신사 존은 겨울밤에 이곳에서 별을 보며 스케이팅을 탈 때 정말로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야외 스피드 링크는 겨울에는 링크로 사용되고, 여름에는 각종 이벤트가 열리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주말에는 자동차 튜닝 경연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예쁘고 매력적인 가게들이 있는 다운타운의 모습을 보며,
레이크 플레시드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이유를 알 것 같더군요.
그리고 올림픽 개최 이후
평창이 가야할 길에 대한 답을 조금은 알 수 있을 듯 했습니다.
다운타운에 새로 짓는 건물은 기존 건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가 되고, 공사 중 벽면에는 외형도가 붙어 있었다.
샌드위치 가게 체인점 Subway 벽면을 채운 각국에서 온 선수단들의 사진과 싸인
주니어 그랑프리 경기가 열린 올림픽 센터 링크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Bed and Breakfast 숙소
응접실에 고양이가 있다는 정보를 인터넷 홈페이지서 봤음에도
저렴하고 무료 인터넷과 아침이 제공되어 골랐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호텔과 콘도보다 좋았습니다.
이유는 아침식사 테이블 때문이었는데요.
함께 모여 아침을 먹는 관계로
자의반 타의반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어떤 인상좋은 아시안 아메리칸 부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데, 딸이 피겨 스케이터라고 하더라구요.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바로 안젤라 왕이었습니다.
딸의 피겨 때문에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콜로라도로 이사간 이야기
안젤라 왕이 김연아 선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 등을 했고,
저는 제 유학생활과 제가 좋아하는 피겨 선수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안젤라 왕 선수가 쇼트를 망치고 프리에서 역전했던 내셔널 이야기도 많이 했죠.
아침 식사가 시간이 휙 지나갔습니다.
결국 나중에 레이크 플레시드에서도 안젤라 왕은 또 역전을 했구요.
그리고 여름마다 이곳에 와서 3년 전부터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고 있다는
전직 캐나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인 노신사 존과도 이야기를 할 수 있었죠.
그의 자동차도 주인처럼 멋있었어요.
저녁에 주차 자리가 없어서 서로 차를 빼다가 서로 씩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요.
존은 알고보니 젊은 시절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습니다.
그에게서는 동계 스포츠의 영원한 딜레마 엘리트 교육 vs. 사회체육에 대한
캐나다 사람으로서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수 있었습니다.
본인이 엘리트 스피드 스케이터이다가 부상과 훈련 비용문제 등으로 선수생활을 접고,
대학에서 공부를 마친후 회계 컨설턴트로 일해온 경험을 담백하게 이야기해주더군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 취미로 피겨를 배우기 시작한 이야기도 해주었구요.
3년 전부터 취미로 피겨를 배우기 시작한 그의 피겨 스케이팅 코치는
올림픽에서 2연속 금메달을 딴 전설의 벨로소바, 프로토포브 페어 부부.
이들 부부는 아직도 아마츄어든 프로든 가리지 않고 여름마다 레이크 플레시드에 와서 열정적으로 코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에게도 정말로 엄격하게 가르친다는 프로토포브를 주니어 그랑프리 도중에도 잠간식 관중석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존은 현대적이고 왁자지껄한 솔트레이크 시티 보다 소박하고 인간적인 레이크 플레시드를 더 사랑하고,
이곳이 진정한 동계 스포츠의 커뮤니티라고 덧붙였습니다.
링크에서 중간 중간 마주치면 말을 걸던 존의 표정은 너무 밝아 보였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가도 존처럼 계속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최근 레이크 플레시드는
점점 서부의 솔트 레이크 시티와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밀려
이미 예전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고, 경쟁력이 떨어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경제 성장의 중심이 중공업과 농업 중심의 미드웨스턴에서 캘리포니아의 새롭게 성장하는 정보산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