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 있는 곳은 미국이지만

국경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미국과 캐나다의 방송을 모두 볼수/들을 수 있습니다.

 

피겨팬 입장으로 보자면

캐나다와 미국의 피겨 스케이팅 중계를 모두 볼 수 있고,

피겨 대회도 거리만 괜찮으면 국경 양쪽에서 다 볼수 있어서

피겨 팬에게는 정말 좋은 곳이죠.

 

두 나라는 어떨 때는 대체재인 듯하면서도 또 어떨 때는 보완재인 듯 하기도 하구요...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국경 근처의 관공서에 가면 국기도 같이 걸어놓으면서도 

의료보험, 총기문제, 세금, 산업 경쟁력 등의 이슈에 있어서는 

서로를 비판하면서 한심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볼수 있는

스케이터들의 문화, 해설자들의 태도와 관중들의 팬덤도

비슷한듯 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점들이 있더군요.

비교해서 보지 않았으면 놓쳤을,

비슷해보이지만 기본적으로 매우 다른 태도와 입장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전부터 포스팅 해 놓은게 있는데, 아직 완성을 못하고 있어요^^)

 

이러한 두나라의 관계는 (어차피 양쪽에 속하지 않는) 저에게 있어서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죠.

(최근 이웃한 동북아 국가의 정권들이 각자의 셈법을 굴리면서

역사의 비극으로부터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채

갈등을 의도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는 요즘은 더욱 그렇습니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방송에서 보도하는 방식을 보면

두 나라의 비슷한 듯 하면서도 판이하게 다른 세계관을 엿볼 기회가 많이 있는데요.

 

이틀 전에 발생한 오타와 국회의사당의 총기 사건에 대해서도

미국 방송인 CNN은 다음 날에도 속보를 통해 캐나다 국회가 다시 열리는 것을 방송하면서

총기를 들고 국회에 난입한 범인을 사살한 군인이 기립 박수를 받는 것을 보여주며 영웅이라고 칭송하고 있을 때

정작 당사자인 캐나다에서는 공영방송 CBC에서 태연하게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를 틀어주고 있었습니다.

 

여하튼 최근에 운전하게 되면 자주 듣는 라디오는

바로 캐나다 공영방송 CBC FM2 입니다.

예전에 잠시 듣다가 최근 캐나다 여행을 가면서 틀어놓기 시작해서

돌아와서도 계속 듣게 되었는데요.

다양한 이른바 월드 뮤직에서부터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주는 이 라디오 방송은

일요일 정오 CBC TV에서도 스튜디오를 보여주는 "Q"와 같은 인기있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잇죠.

 

오늘 아침 운전을 하는데,

진행자가 거쉰이 연주되는 콘서트를 놓치게 된 청취자의 사연을 읽어준후

거쉰의 음악이 나왔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F 장조 3악장이었습니다.

 

 

바로 김연아 선수의 밴쿠버 올림픽 시즌 프리 음악입니다.

자동차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BBC 내셔널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곡은

기존의 연주곡들과 흐름이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욱 재미있게 들을수 있었습니다.

거쉰 특유의 역동성과 순간순간 자유롭게 분출되는 해방감이

어느새 운전석 안에 가득차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유분방한 선율과 리듬을

김연아 선수가 은반위에 고스란히 표현했던 4년 전의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절묘한 편곡과 안무였습니다...

 

BBC가 영국 오케스트라의 관점에서

거쉰이라는 미국 작곡가의 선율을 재해석했듯이

김연아 선수 역시 자신만의 새로운 거쉰을 펼쳤던 것이죠...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운전석을 뜰수 없었어요.

 

이제 운전석 문을 열고 나서려 하는데,

다음 신청곡의 사연이 나오더군요.

15년 전 해외에 파병된 남편이 없이 맞이한 어머니 날

이제는 30대가 된 틴에이저 아들이 선물로 사온

DVD를 함께 본 추억이 있는 음악이라는 사연과 함께 신청된 곡이었습니다.

바로 영화 "포레스트 검프" OST 였습니다.

 

 

역시, 이 음악을 듣는 동안 밴쿠버 올림픽 중계에서 봤던

또 한명의 스케이터의 환한 웃음이 생각났습니다.

바로 곽민정 선수였죠.

 

 

포레스트 검프는 지난 시즌 곽민정 선수의 프리 음악이었습니다.

시즌 시작 전 연습 도중 다시 부상을 당한 곽민정 선수는

결국 시즌을 접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지 못했죠.

관련포스팅: 랭킹전에서 볼 수 없는 스케이터들의 쾌유를 기원하며

 

하지만 곽민정 선수는 오랜 재활 끝에 부상을 이기고

이번 시즌 다시 돌아오기 위해 맹연습중이라고 합니다.

https://twitter.com/miniminjeong

 

어쩌면 영원히 보지 못 했을수도 있을

곽민정 선수의 "포레스트 검프" 프로그램을

곧 볼수 있을 것입니다.

 

 

힘든 부상을 이겨내고 다시 컴피로 돌아오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대학생 스케이터 곽민정 선수

그리고 컴피 은퇴후 새로운 인생을 위해 대학원에 다니면서도

틈틈이 링크를 찾아 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김연아 선수

 

소치의 황망함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던

밴쿠버 그날의 기억들이 되살아 난 아침이었습니다.

 

피겨 스케이팅이 판정시비로 얼룩져도

결국 피겨팬들이 영원히 기억하게 되는 것은

정직한 스케이터들의 바로 그 순간들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은 시니어 그랑프리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매번 그랑프리 시즌이 되면 직관 갈 계획에 마음이 들뜨고는 했는데,

정작 한국 스케이터들이 출전하는 이번 그랑프리에는

첫 그랑프리인 스케이트 아메리카가 열리는 시카고는

비록 같은 미국 땅이라고는 하나, 제가 있는 곳과 시간대 마저 다른 먼 곳이고,

다음주에 열리는 스케이트 캐나다 역시 서부인 브리티시 콜럼비아에서 열려서

직관은 엄두도 못냈습니다.

(어정쩡하게 가까운 곳이면 가고 싶었을 텐데, 오히려 잘 된듯 싶어요...)

 

이번 그랑프리 시리즈는

모든 그랑프리에 한국 스케이터들이 참가하는 최초의 그랑프리입니다.

단지 여싱 뿐만 아니라 남싱과 아댄에도 팀 코리아의 자켓을 입은 스케이터들이

세계 각지의 링크에 서게 됩니다.

 

팀 코리아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정직한 스케이터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는 날이

언젠가는 오기를 여전히 기다립니다.

 

우중충한 미국 동북부의 가을 하늘에도

1주일만에 어느새 따뜻한 햇살이 비치고 있더군요.

 

-스파이럴 드림-

 

14/15 시즌 시니어 그랑프리 일정

10/ 24~26    SA 미국, 시카고 - 박소연

10/ 31~11/ 2 SC 캐나다, 캘로우나 (브리티시 컬럼비아) - 김해진

11/ 7~9    COC 중국, 상하이 김해진, 김진서

11/ 14~16 COR 러시아, 모스크바 - 박소연, 김레베카/키릴 미노프

11/ 21~23 TEB 프랑스, 보르도 - 김레베카/키릴 미노프

11/ 28~30 NHK 일본, 오사카 - 김진서

 

2011년 여름, 태릉 실내 빙상장 (c) 오마이뉴스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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