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그랑프리 마지막 시리즈인
7차 에스토니아 탈린이 경기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에는 올림픽 예선을 겸한 네벨혼 트로피 대회도 있었죠.
지난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여싱에서 금메달(김해진)과 은메달(박소연),
남싱에서 동메달(김진서)을 획득했던 것에 비해
이번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에는 포디움에 올라선 선수가 없습니다.
남싱의 올림픽 출전권 획득도 실패했구요.
결과적으로 보면 시즌 시작 전의 화려했던 기대와는 달리
아쉬운 결과입니다.
이번 시즌 올림픽을 앞두고
그랑프리에 참가하기로 했던
김연아 선수가 발등부상으로 그랑프리 참가를 포기함에 따라
이번 시즌 시니어 그랑프리에도 한국 선수는 참가자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김연아 선수의 컴백과 커리어 동안의 성적으로
한국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어느 정도의 착시효과와 과장된 기대가 있다고도 합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출전권이지만
작년 6월 총회에서 빼았겨버린 올림픽 개최국 자동 출전권.
관련포스팅: [ISU 헌정칼럼 3] 올림픽 개최국 피겨 자동 출전권 폐지 그리고 내맘대로 기술 최저점
이제 어쩔수 없이 평창올림픽 출전을 위해서
한국 피겨 스케이팅은 싸워야 하는데요.
벌써부터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포스트 김연아의 한국 스케이팅은
실제로 어느 정도에 와 있는 것일까요?
출처: 오마이뉴스 (c) 곽진성
여자싱글을 우선 살펴보고,
남자싱글 그리고 아이스 댄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자 싱글
지난 시즌 ISU 공인 대회에서 130점이 넘는 점수를 기록하는 선수는
김연아 선수를 제외하고는
이른바 투탑인 김해진, 박소연 선수 밖에 없었습니다.
12/13 주니어 그랑프리 성적을 보면
박소연, 김해진 선수가 140점대를 기록했지만,
박경원, 변지현, 이연수, 이태연, 최휘 선수는
120점을 넘지 못했습니다.
4대륙 선수권에서도 박연준 선수 혼자 출전하여
100점대의 성적을 기록했구요.
하지만 이번 시즌은
지난 시즌과 다른 질적, 양적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니어 그랑프리에 처음 출전한
김나현, 최다빈 선수는
ISU 퍼스널 베스트 140점을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김규은 선수도 130점 이상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주니어 그랑프리 한국 여자 싱글 결과
* 각 대회명을 클릭하면 해당대회 상세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다소 아쉬웠던 것은 이른바
투 탑인 김해진, 박소연 선수의 시즌초 부진인데요.
시즌 초반 박소연 선수는 주니어 선발전에서 탈락하고,
김해진 선수 역시 주니어 그랑프리 3차에서 120점대를 기록하며 부진하였습니다.
하지만, 김해진 선수는 6차에서 다시 140점대 이상을 기록하였고,
박소연 선수 역시 랭킹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이들 역시 이번 시즌 남은 대회에 잘 적응한다면,
시니어 스케이터로
포스트 김연아 시대를 이끌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시즌 초 부상을 당한
곽민정 선수는 시즌 말 동계체전(2월)과 종별선수권(4월)에
참가하며 컴백했습니다.
(10월 22일 추가)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10월 중순에 열린
유니버시아드 예선에는 참가하지 않았는데요.
부상 후유증으로 이번 시즌은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네벨혼 트로피에서 결정된 올림픽 출전 예선 결과를 보면
여자 싱글은
130점대 초반에서 커트라인이 결정되었습니다.
지난 세계선수권을 보더라도 140점대는 올림픽 출전 안정권으로 보여집니다.
현재 한국 여싱의 수준과 저변을 보면
평창올림픽 출전권 획득을 우려할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고 보입니다.
문제는 그 이상으로 발돋움하는 것인데요.
포스트 김연아 한국 여자 싱글의
단기적 과제는
ISU 공인성적 150점입니다.
이른바 시니어 그랑프리 서킷에 들어가기 위한 상징적인
점수입니다.
신체점제 도입 후 ISU 공인 대회에서
한국의 여자싱글은 김연아 선수를 제외하고는
단 두명이 지금까지 150점을 넘겼는데요.
김나영 158.49 (2008 사대륙 선수권)
곽민정 155.53 (2010 밴쿠버 올림픽)
시니어 그랑프리 출전 역시
신채점제 이후 김연아 선수를 제외하고는
세명에 불과합니다.
김채화 (2006 컵 오브 차이나, 2006, 2007 NHK 트로피)
김나영 (2008 컵 오브 차이나, 컵 오브 러시아)
곽민정 (2010 컵 오브 차이나, 스케이트 아메리카)
이들이 출전했던 시기까지는 싱글의 엔트리가 12명이었지만
지금은 10명으로 줄어들어 그랑프리 출전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 점수를 넘어서고, 시니어 선수들이 그랑프리에 출전하면서
인지도를 높이고 그 이상의 점수대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150점대를 받기 위해서는
1) 기술적으로는 3+3 혹은 2A+3T 점프
그리고 PCS로는 각 요소별 최소 5점대 후반 이상의 점수
혹은
2) 3+3 없이는 PCS에서 각 요소별 최소 7점대 이상의 점수
가 필요합니다.
남자 싱글
지난 두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포디움에 한차례씩 올랐던
한국 남싱은 이번 시즌 포디움에 들지 못했습니다.
솔트레이크 올림픽에 이규현 선수가 마지막으로 출전했던
한국 남자 싱글은 토리노, 밴쿠버에 이어 소치에도
올림픽 출전을 못하게 되었는데요.
네벨혼 트로피에서 기대를 모았던
김진서 선수가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쇼트경기에서 아쉬운 결과를 보여주며,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남자 싱글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시즌입니다.
주니어 그랑프리 한국 남자 싱글 결과
* 각 대회명을 클릭하면 해당대회 상세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네벨혼 트로피 (올림픽 출전권 예선전) 한국 남자 싱글 결과
9/26~28 독일, 오베르스도르프, 김진서 20위, 161.29
관련포스팅: 네벨혼 트로피, 김진서 20위, 올림픽 출전권 획득 실패
이번 소치 올림픽 컷트라인은 184.07점이었는데요.
참고로 지난 밴쿠버 올림픽예선을 겸한
2009 네벨혼 트로피에서는
올림픽 출전권 커트라인이 164점으로
4년 동안 점수대가 20점이나 올라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니어 그랑프리에서는
이동원 선수가 다소 부진했지만,
이준형 선수는
이번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170점대를 꾸준히 넘겼고,
김진서 선수는
마지막 7차에서 한국 남싱 최초로
ISU 공인 180점대를 돌파하며, 184.97의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남자 싱글에서 180점대가 중요한 이유는
이번 네벨혼 트로피에서 본 것처럼
올림픽 출전권의 컷트라인이 180점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180점 대는 PCS의 엄청난 도움이 없는 한
기술적으로는 트리플 악셀이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사실 한국 남자 싱글의 1차 목표는 180점이라고 볼수 있는데요.
마지막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이 점수를 일단 넘어섰습니다.
평창올림픽 출전을 위해서는 4년후에도
180점대 이상의 선수들이 꾸준히 있어야 합니다.
한국 남자싱글의 그 다음 목표는 200점 대입니다.
ISU 공인은 물론 국내 대회에서도 아직 200점대는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 대회 최고 성적은
김진서 선수가 지난 네벨혼 트로피 선발전에서 기록한 199.11 입니다.
200점대 이상의 점수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받을 수 있는데요.
1) 트리플 악셀을 쇼트 프리 합쳐
3개 이상 성공하고
각부분 최소 6점대 초반이상의 PCS
2) 쿼드를 인정받거나
3) 트리플 악셀없이
제이슨 브라운이나 네이선 챈 처럼
점프들을 거의 클린하고 2점대의 GOE + 각부분 PCS 7점대
200점대의 점수는 주니어월드 포디움 권
그리고 대략 시니어 그랑프리에 참가할 수 있는
컷트라인 점수대와도 일치합니다.
한국 남자 싱글은 신체점제 이후 지금까지
시니어 그랑프리에 참가한 적이 없습니다.
비록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는 한국 남자싱글을 볼 수 없지만,
몇년 사이 한국 남싱은 질적, 양적으로 급성장해왔습니다.
이른바 "남싱 JGP 96라인" 김진서, 이준형, 이동원 이외에도
대학생 맏형 김민석 선수와 표현력이 좋은 시니어 김환진, 감강찬 선수가 있고,
그 뒤로 주니어 변세종, 감강인 선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차세대 꿈나무로 차준환, 이시형, 박성훈, 안건형 선수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내년 1월의 종합선수권에서는 남싱 시니어가 8명이 되어
한국 남자 싱글 시니어 경기가
사상 처음으로 2그룹으로 열리게 됩니다.
아이스 댄싱
이번 시즌
두번째 주니어 그랑프리 시즌을 맞이한
김레베카/키릴 미노프 팀이 ISU 공인 120점대를 돌파했습니다.
주니어 그랑프리 한국 아이스 댄싱 결과
* 각 대회명을 클릭하면 해당대회 상세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2013 네벨혼 결과로 보는 올림픽 출전권 컷트라인은
120점 입니다.
세계선수권으로 보면 대략 130점대가 올림픽 출전을 위한 안정권으로 보입니다.
비록 레베카/키릴팀이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120점대를 돌파했지만,
쇼트 댄스 수행과제도 더 어렵고, 채점도 까다로운 시니어 점수를 감안한다면
평창 올림픽 출전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한국 아이스 댄싱의 1차 목표는 140점입니다.
140점은 시니어 그랑프리에 초대받을 수 있는 지난 시즌 24위의 시즌 베스트 하한선이면서도
동시에 주니어 월드의 포디움 성적입니다.
사실 한국 아이스 댄싱에게 있어
이러한 점수대 목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선수층입니다.
이번 시즌의 경우도 당초 3팀으로 맞이할 전망이었으나,
김지원/오재웅 팀은 주니어 선발전 직전 기권했습니다.
김지원/오재웅, 2013 종합선수권 쇼트 댄스
한국 아이스 댄싱은
김레베카/키릴 미노프의 러시아 훈련 팀과
아직 대회에서 선을 보이지 않은
민유라/티모시 콜레토의 미국 훈련팀의
해외 훈련파 2팀으로 이끌어져 가고 있습니다.
김레베카/키릴 미노프의 주니어 월드 쇼트댄스 (출처: ice-dance.com)
미국 미시간 노바이에서 훈련중인 민유라/티모시 콜레토 선수
출처: http://instagram.com/p/aqm6rLr19B/ 트위터 @Yuraxmin, @TimKoleto
관련포스팅: 한국 아이스 댄스 다시 기지개 시작 - 이번 시즌 3팀 체제로
민유라/티모시 콜레토 팀은 콜레토 선수가 이미 주니어 연령이 넘어
주니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시니어 팀으로 데뷔할 예정인데요.
다음 시즌 김레베카/키릴 미노프 팀 역시 키릴 미노프의 연령이 넘어
시니어로 올라갑니다.
김지원/오재웅팀이 복귀하지 않고, 새로운 팀이 생기지 않는다면,
다음 시즌 주니어에는 한국 아이스 댄싱팀이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번 시즌에도 주니어 그랑프리 출전권 3장을 포기했듯이
다음 시즌에는 출전권을 모두 포기해야 되겠죠.
평창 올림픽 자동출전권이 있었다면
주니어 팀의 결성과 유지는
상황이 매우 달랐을 것입니다.
포스트 김연아/평창
더 나아가 평창 이후를 위해서
너무 과한 자신감도
그렇다고 과한 우려도 할 필요가 없이
한국 싱글 스케이팅은 제대로 성장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해외 코치와 링크에 기대어 몇몇 선수만 성장하는 구조가 아닌
전체적으로 선수층이 늘어나고 은퇴한 선수들이 코치로 다시 링크에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고 있습니다.
이를 받혀줄 제대로 된 피겨 전용 링크 연습장이 있다면 말이죠.
여자싱글 저변의 질적 양적 발전은
단지 97~00 세대의 반짝 성공에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종합선수권에서 노비스 출전 선수가 많아
사전에 예선을 치뤄야 했던 것도
저변의 확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등록 선수 숫자의 증가 뿐만 아니라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선수들 중에서도
이미 피겨팬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는
유망한 선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창 이후가 더 기대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남자싱글은 아직 주니어, 노비스의 선수층이 얇은 것이 아쉽지만,
정성일, 이규현, 이동훈, 김민석 선수처럼
한 세대를 선수 혼자서 외롭게 분투하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른바 주니어 그랑프리 96라인 3인방 뿐만 아니라
그 이후 세대도 꾸준히 성장해오고 있습니다.
아직 여싱만큼은 아니지만,
남싱 역시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파이널 진출을 노려보는 시기가
곧 오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남싱의 경우
전용링크나 선수층 확대 이외에도
또하나 해결해야할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병역의 의무입니다.
20세 전후에 전성기를 맞게 되는
여자싱글과 달리
남자싱글은 20대 중반까지 계속 발전하며
전성기를 맞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올림픽 포디움 및 아시안게임 금메달 입상을 통해
병역 면제 혜택이 주어지는 길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대안으로 군국체육부대 상무를 생각할 수 있는데요.
군대피겨, 각잡힌 트리플 악셀...과연...?
1990년대 초반 상무 부대에 피겨 팀이 있었는데요.
한국 아이스 댄스를 이끌었고 현재 김연아 선수의 코치인
류종현 선수가 1990년~1992년까지 상무 소속으로 활약하며
당시 여고생이던 박윤희 선수와 팀을 이루어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Snakedcats 님 트윗)
또한 한국 남싱을 이끌었던 정성일 선수 역시 1993년~1995년
상무 소속으로 경기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나눈님의 댓글 제보)
상무에 피겨 스케이팅 팀이 다시 생길수 있을까요?
상무부대에는 2013년 10월 현재
동계 스포츠 종목으로는
아이스하키 (17명), 스키(2명), 바이애슬론 (3명)
스피드 스케이팅 (1명), 쇼트트랙 (3명)이 있고,
채점 스포츠로는 체조(9명)가 있습니다.
출처: 상무부대 홈페이지 http://www.sangmu.mil.kr/
오랜 공백을 딛고 다시 스텝을 내딛기 시작한 한국의
아이스댄싱은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관련포스팅: 한국 아이스댄싱 국제무대 도전의 역사
우선 평창올림픽 자동 출전권 확보가 날아가버린 직격탄을 맞아버려,
평창올림픽 출전 자체도 불투명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스 댄싱은 링크장과 선수층이 확보되지 않는 한
평창올림픽 전후해서 반짝하거나
혹은 해외 교포 선수들에게 의존하는 시스템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이스 댄싱의 경우 코치의 문제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 데요.
바로 연습공간으로서의 링크입니다.
넉넉한 공간의 링크가 확보되지 않으면 아이스 댄싱의 주요 기술들인
리프팅과 기본 스텝 등의 연습은 사실상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아이스 댄싱은 단순히 하나의 종목으로서가 아닌
생활체육과 싱글 경기를 위한 탄탄한 기초 종목으로서의 의미도 있습니다.
부상위험이 큰 점프위주의 싱글 피겨 대신
북미에서 어덜트 스케이터들은
패턴 댄스와 프리 인터프리테이션 등을 통해
생활체육으로 피겨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활체육으로서의 스케이팅을 이야기하자면
싱크로나이즈드 스케이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여자 싱글과 아이스댄싱에서의 핀란드의 최근의 약진은
싱크로나이즈드 최강국으로서의 싱크로나이즈드 스케이팅의 저변과
인기에 의해 탄탄하게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싱크로나이즈드 팀들이 있지만,
싱글과 대학입시 위주의 스케이팅 문화에 밀려
어렵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관련 포스팅: 싱크로나이즈드 스케이팅 "팀 블레싱"을 소개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입시 위주, 엘리트 위주의
스케이팅 문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어린시절 피아노, 미술, 수영을 취미로 배우듯이
스케이팅을 타면서 놀고 그 중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커나가는
환경이 되어야겠지요.
하지만 항상 사람은 많고 인프라는 부족한 한국사회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피겨 스케이팅 역시 링크가 부족하고 경쟁이 심한 현재의 체제에서
이것은 막연한 이상주의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시스템이 가능할까요?
한국 스케이팅의 현재 모습은
양궁처럼 국가 주도의 엘리트 육성이라기 보다는
골프와 같은 부모가 자녀들의 비용을 대는 쪽에 더 가깝다고 보면 될 듯 합니다.
하지만 골프와 같은 구조로는 지속가능하기가 힘든게,
우선 동계종목은 기본적인 경기장 인프라가 개인이 해결할 수 없습니다.
또한 상금이 많아서 일정수준의 경기 실력이 되면
개인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골프와 달리
피겨 스케이팅은 상금을 통해서 비용을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비용 역시 다른 여타 스포츠 종목에 비해 많이 들어가죠.
그렇다면 무작정 세금을 링크장 운영에 퍼부어야 할 까요?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체육 시설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피겨가 인기가 많은 북미와 동부, 북부 유럽의 경우에도
피겨 스케이팅만으로는 링크장의 채산성을 맞출수 없습니다.
그 많은 링크장이 유지되는 비결은
아이스 하키의 인기 때문입니다.
NHL의 인기가 높은 북동부 미국과 캐나다는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 핀란드, 스웨덴, 체코 등의 국내 아이스 하키 리그의 인기는
매우 높아서 이들의 수준급 선수들은 북미의 NHL에서도 활약합니다.
이들 지역에서 관람석이 10,000석 가까이 되는 링크들이 도시마다 있는 것은
피겨 스케이팅 때문이 아니라 각종 레벨의 프로 아이스 하키 리그 때문이고
이들 경기장들은 하키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는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는 지역의 센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한국의 도시들에
축구장을 겸한 공설 운동장, 프로 야구장 그리고
실내체육관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또한 동네에 있는 연습 링크들은
아이스 하키 강습과 아마츄어 선수들에 의해
이용되고 유지됩니다.
2013 세계선수권 공식 연습링크였던 캐나다 런던의 웨스턴 페어는 4면의 링크가 있었다. 세계선수권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나머지 3개의 링크에서는 아이스하키, 피겨 스케이팅, 쇼트트랙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이러한 채산성을 바탕으로 쇼트트랙과 피겨 스케이팅 역시
여러 면의 링크 중에 일부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동네 링크에서 소질을 보인 피겨 스케이터들은
주니어 레벨이 넘어가면서 유명코치들이 소속된
피겨 스케이팅 클럽으로 옮겨 훈련을 받게 됩니다.
비록 리그가 있으나
아이스 하키가 피겨보다 더 인기가 없는 한국의 경우
이른바 일반이들이 함께 타는 퍼블릭 스케이팅이 없이는
링크가 운영되기 힘든 구조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개인이나 기업이 링크를 지어도 국가에 기증해서
지자체가 관리하는 현재의 법률이 개정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선 필요한
단기적인 해결책은
국가가 국가대표와 상비군 수준의 연습을 지원할 수 있는
피겨 전용 링크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이 쇼트트랙 및 아이스 하키와 링크를 같이 쓰며
시간을 나누어 쓰는 것은
서로 다른 빙질을 사용해야하는 특성상 지속되기 힘듭니다.
태릉실내빙상장 전경, 사진: 구라마제님 http://blog.naver.com/leaninseeker
이것은 단지 피겨 스케이팅만의 문제는 아닌데요.
쇼트트랙도 유독 한국 선수들이 조기에 은퇴하는 것은
두터운 선수층으로 인한 치열한 경쟁 이외에도
부실한 링크로 인한 잦은 부상도 그 이유일 것입니다.
여러 종목이 같이 쓰다 보니, 태릉 실내 빙상장의 안전장치는
임시적으로 설치할 수 밖에 없고, 결국 부실하기 그지 없습니다.
다시 피겨 스케이팅 인프라로 돌아와서
국가대표 링크장을 피겨 스케이팅 연습 전용으로 짓되
대회 선발전 등을 치룰 때 어느 정도의 관객이 들어올 수 있게
400 여석 가량의 소규모 좌석을 갖춘 링크를 수도권에 만드는 것이죠.
대략 아산 이순신 빙상장이나 의정부 빙상장 정도가 벤치 마킹 대상이 될 것입니다.
다시 오지 않을 피겨 스케이팅의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
지금의 기회를 놓친다면
한 때 피겨 강국이었으나 이제는 올림픽에서 조차 참가 선수를 찾아보기 힘든
다른 국가들의 역사를 뒤따라갈지도 모릅니다.
올림픽을 3연속으로 우승한 소냐 헤니의 나라
동계스포츠의 절대강자 노르웨이는
스키와 스피드 스케이팅의 강세에도 불구하고,
피겨 스케이팅에서는 실내 링크로 바뀐 후
세계 피겨 무대에서 급속하게 변방으로 사라졌습니다.
1964년 이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에서
1992년 단 한번 출전하였고,
이제서야 네벨혼 선발전에서 소치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그러면 또 어떠냐구요?
사실 국가적으로 보면 나쁘지는 않습니다.
엘리트 스케이터가 일상 생활의 모든 것도 아니구요...
사실 노르웨이 처럼 사회복지가 잘되어 있고,
탑싱 스케이터가 없는게 더 좋은 나라겠죠.
그러면 뭐냐구요?
피겨 스케이팅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에의
도움 등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영화 "주라기 공원"이 현대자동차 몇대를 팔아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네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피겨 스케이팅 팬으로서의 이기심 혹은 바램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스케이팅을 생활 속에서 즐기는 것이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재능 있는 스케이터들이 있을 때
그들이 올림픽 챔피언의 꿈을
현실적으로 가질 수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피겨 스케이팅 문화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우리가 최근 몇년동안 보아온 것처럼...
그리고 어떤 사회든 다음 세대에게
꿈을 심어주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다면,
적절한 수준의 공공적 사회적 비용은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적자 투성이 경전철을 만들거나
환경 파괴해가면서 강바닥 파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또한, 피겨 스케이팅 팬의 입장으로 보자면,
10 여년도 훨씬 넘게 기다려와서 이제서야
국제 대회에서 한국 피겨 스케이팅 팬의 기쁨을 맛본 지금...
다시 이전의 한국 피겨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피겨 스케이팅 직관과 관람이 생활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이미 많은 부분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2013년 1월, 국가대표 훈련 개시식에 참석한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 사진
좌측부터 김나현, 박경원, 박소연, 최휘 (뒷줄), 김규은 (앞줄), 김해진 (뒷줄), 변지현 (앞줄), 김진서, 김민석, 이준형, 이동원
(츨처: http://blog.daum.net/dn975/14786162 )
같은 캐나다에서 열린 대회의 직관이었지만
한국 선수가 없던 2011 스케이트 캐나다와
한국 선수가 출전한 2013 세계선수권은 너무나 다른 대회였습니다.
저는 피겨팬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한국 피겨팬이라는 사실 역시 변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논바닥에서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신고 오뎅을 먹던 기억이
처음으로 개장한 실내 스케이트장에서 환하게 빛나던 사람들의 표정이
유년의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