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주니어 여자 피겨는 왜 요즘 강할까?

두번째 포스팅입니다.

 

1부 포스팅 링크 -

변화의 바람 그리고 잃어버린 10년

 

1부를 읽은 후 2부를 읽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귀찮은 분들을 위해

지난 줄거리 )

 

페어와 아댄 그리고 남자싱글에 밀려

피겨 스케이팅 제국, 소련 시절에도

가장 약했던 러시아 여자 피겨.

 

소련 붕괴후 90년대 무너진 러시아의 경제상황에서

피겨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끊기고.

이에 피겨 인력은 러시아를 떠나면서

피겨 인프라는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소련 엘리트 시스템의 마지막 혜택을 받고 성장한

이리나 슬루츠카야 여싱 세대가 기적적으로 

90년대 후반 대공황의 러시아에 희망을 선사하고...

 

그러나 기쁨도 잠시,

슬루츠카야의 은퇴와 함께

90년대 경제위기로 무너진 피겨 인프라 때문에

러시아 여싱의 한 세대가 붕괴되면서

러시아 여싱은 짧았던 부흥이 끝나고

다시 침체기에 접어드는데...

 

그 와중에 꿋꿋이 홀로 버틴 알레나 레오노바

 

하지만, 다시 서서히 잠재력을 드러내는

러시아 주니어 여싱. 

2009년부터 홀연히 국제 무대에 나타나

주니어 대회 포디움에 서기 시작하더니

지금까지 계속 주니어 여싱을 점령하고 있는

러시아의 이른바 "피겨 신동들"

 

과연 러시아에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부 시작합니다.
 

자본주의로의 이행 그리고 인프라의 재건 - 2000 모스크바

 

1부에서 이야기했듯이

90년대 러시아의 경제 공황과 함께 러시아의 인력들은

미국으로 미국으로 떠나갔는데요.

 

1998년 재정위기로 최악의 상황을 맞았던 러시아 경제는

2000년부터 서서히 소련 붕괴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러시아의 경제가 2000년 이후 되살아나면서

예전의 스케이팅 스타들과 코치들은

하나둘씩 러시아로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Vladimir Putin)은 2000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강한 러시아를 부르짖죠.

 

푸틴은 소련의 비밀경찰 KGB에 재직중에

91년 8월, 고르바초프의 개방노선에 반대하는 소련 공산당 세력의 쿠데타에 맞서며 사임하고,

이를 계기로 옐친의 러시아 정부에서 일하며 정치에 입문하게 되는데요.

 

푸틴은 아이러니 하게도 아니면 당연하게도

살아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공산주의 소련 시대의 국가주도의 엘리트 체육 인프라를

러시아에 다시 구축하고자 합니다.


2012년 5월, 솔트레이크 시티 올림픽 후 러시아 피겨팀과 함께한 블라디미르 푸틴

왼쪽부터 알렉세이 미쉰 (플루센코 코치), 예브게니 플루센코, 발렌틴 피세프 (Valentin Piseev, 러시아 피겨연맹 회장),
엘레나 베레즈나야 (Elena Berezhnaya, 솔트레이크 시티 스캔들의 바로 그 페어팀), 블라디미르 푸틴,
안톤 시카룰리제(Anton Sikharulidze, 페어팀), 이리나 슬루츠카야, 타마라 모스크비나 (페어코치),
자나 글로모바 (Zhanna Gromova, 슬루츠카야 코치)

처: http://en.wikipedia.org/wiki/Valentin_Piseev


2001년, 타마라 모스크비나가 가장 먼저 생 페테르스부르크로 돌아오고

그녀의 제자이자 코칭 스탭이 된 올림픽 챔피언 아르투르 드미트리예프

미국에서 돌아와 코치진에 합류합니다.

2006년, 타티아나 타라소바가 모스크바로 돌아오고,

미국에서 그녀의 보조 코치를 하던 아이스 댄서 마리아 우소바

그리고 우소바의 파트너였던 알렉산더 줄린도 돌아 옵니다.

(그들의 라이벌이었던 옥산나 그리슉예브게니 플라토프는 여전히 미국에 있습니다.)

 

이렇게 러시아의 피겨 인프라가 되살아나던

2000년 대에 들어서면서 피겨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이른바 러시아 여싱 신동 1세대입니다.

 

이들의 아이돌은 이미 페어 스케이터나 아이스 댄서가 아닌

소련의 엘리트 시스템의 마지막 여싱

이리나 슬루츠카야였습니다.



70년대 후반에 태어나 80년대 성장기에 구소련의 마지막 엘리트 피겨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슬루츠카야와 그녀의 동세대 스케이터들은

러시아의 피겨 인프라가 망가진 90년대 중반 살아남았을 뿐 만 아니라 번창합니다.

주니어로 성공적으로 데뷔하고 시니어 월드 포디움에 오르며

경제위기로 지친 러시아 국민들의 희망이 되죠.

그리고 슬루츠카야는 2000년에 들어서면서 절정기를 맞이합니다.




어머니의 신장 이식 수술로 인한 간호와

본인의 혈관염으로 2003년 겨울부터 컴피를 떠났던 슬루츠카야는 2004년 가을 컴백하고,

2005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2번째로 월드 챔피언이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소련이 길러낸 엘리트 피겨 세대였던

슬루츠카야 세대의 은퇴후

90년대 피겨 인프라의 붕괴로 생긴

잃어버린 세대의 공백이 찾아옵니다.

 

경제공황에도 미쉰 코치가 홀로 지키며

선수들을 육성했던 남자 싱글과 달리

여자 싱글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죠.

 

잃어버린 세대 중

알레나 레오노바 (1990년생) 만이 홀로 살아남아

러시아 여싱을 버텨내죠.

 

하지만 2000년의 시작과 함께

러시아의 피겨 인프라는 다시 구축되기 시작합니다.


인프라가 다시 구축되는 동안

훈련공간 확보를 위해 아이스 링크 사정이 더 좋아야 하고

전문적인 코칭 스탭이 있어야 하는 페어와 아댄 대신

어린 스케이터들은 싱글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다시 복구된 러시아 피겨 시스템에서는

더이상 페어와 아댄이 여자 스케이터들의 첫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잃어버린 10년 후, 역설적으로

러시아에 여자싱글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신동 1세대

엘리바베타 뚝따미셰바 (1996년 12월생)와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1996년 7월생)는

모두 4살때부터 피겨를 시작햇는데,

바로 2000년 부터인 셈이죠.

2013 유로, 왼쪽부터 소트니코바, 뚝따미쉐바


신동 1.5세대의 경우

율리아 리프니츠카야 (1998년 6월생)와

안나 포고릴라야 (1998년 4월생)는

2002년(만 4세)부터 피겨를 시작했습니다.

2013 주니어 세계선수권 러시아의 포디움 스윕, 왼쪽부터 리프니츠카야, 라디오노바, 포고릴라야


이들의 재능이 눈에 띄기 시작할 무렵,

2005년 소치 올림픽 유치와 함께 정부의 지원 정책이 수립되고

2007년 소치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면서 러시아 정부는 동계종목 지원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합니다.


타티아나 타라소바와 함께 피겨 링크를 찾은 블라디미르 푸틴

 

그리고 이러한 지원은

평창 올림픽에서 전성기를 맞이할

러시아 신동 2세대의 성장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구 소련 체제에서 그랬던 것처럼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매우 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피겨 강습이 러시아에 다시 보편화되죠.

차이점이 있다면 피겨 선수와 그들의 부모들은

이제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명예와 성공을 위해 스케이팅에 매진합니다.


신동 2 세대

엘레나 라디오노바 (1999년 1월생) 2002년 시작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 (1999년 11월생) 2002년 시작

세라피마 사하노비치 (2000년 2월생) 2007년 시작

마리아 소츠코바 (2000년 4월생) 2004년 시작

알렉산드라 프로클로바 (2000년 4월생 ) 2004년 시작


2013 네벨혼 트로피, 엘레나 라디오노바


2013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러시아의 포디움 스윕, 왼쪽부터 사하노비치, 소츠코바, 메드베데바


신동 2세대중,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알렉산드라 프로클로바

작은 신체이지만 뛰어난 표현력과 스케이팅 스킬을 가지고 있다.

 

지난 5월 6일 KBS에서 방송한 

시사기획 창 "대한민국 피겨, 김연아 이후를 논하다"에서 

러시아의 최근 강세를 보도한 바 있죠. 

이 영상에서 러시아 신동들의 훈련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4부로 나누어서 올려져 있습니다. 위의 영상은 2부입니다.

1부 부터 보시려면 아래 클릭

http://youtu.be/_jxtW_Nxt9o?list=UUOY9jcmfUdn0GN1_g6cgAJw


러시아 신동들중 상당수가 저소득의 어려운 가정 출신인 것을 보면

이러한 정책이 재능이 있으나 재정적으로 어려운

스케이터들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훈련을 지속하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한국에 이들이 태어났다면

비싼 대관료와 강습료 때문에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될 수 없었겠죠.

 

카타리나 비트 역시 그녀의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공산주의 동독 정부에 대해서

"어두운 시대였지만 개인적으로 만약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났다면

재정적인 문제로 스케이터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하죠

 

하지만 이것이 부러워할 일은 아닙니다.

카나타리 비트가 미국에 태어났으면

돈이 없어 피겨 스케이터가 될수 없었겠지만,

공산주의 동독에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사생활은 없어지고

비밀 경찰 슈타지에 포섭된 동료 스케이터에 의해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를 당했으니까요...

관련 포스팅: 카타리나 비트 다큐멘터리, "The Diplomat" 피겨 버전 "백야" 혹은 "타인의 삶"

 

스탈린에 의해 사회주의라는 허울뒤에

"러시아 국수주의 일당 독재 전체주의 국가"가 되었던

소련은 체제 붕괴후

이제는 소련 시절 KGB 요원이었던 갑부 푸틴에 의해

"러시아 국수주의 자본 독재국가"가 된 것이죠.


러시아의 국가는 소련 시절 국가에서 가사만 바뀌었습니다.

레닌과 공산주의가 빠진 자리에

러시아와 넓은영토 라는 단어로 채워졌습니다.


체제가 바뀌어도 스포츠 스타는 여전히 독재정권을

굴러가게 하는 유용한 선전 수단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점점 벌어져가는 빈부의 격차를 은폐할 수 있는

신데렐라 스토리이기도 하죠.

 

한국의 80년대 군사독재시설,

태릉선수촌의 시설이 보강되고

엘리트 체육을 통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급작스럽게 늘어났듯이...

88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도시 미관을 위해 달동네를 철거하면서

마치 올림픽이 끝나면 선진국이 될 것인양 선전했던 것처럼

관련포스팅: 내가 기억하는 88올림픽의 추억 10가지

임춘애가 라면 먹고 뛰다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고

과장해서 선전되었듯이...

관련포스팅: "라면소녀" 임춘애 "칼국수 아줌마"로 변신



러시아의 신동들은 레전드가 될 수 있을까?


어린 시절을 희생해야만 탑 운동선수가 될 수 있는

기계체조와 피겨 스케이팅은

러시아의 발레와 어우러져

소비에트 연방 시절부터 엘리트 체육 육성 시스템에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종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종목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기계체조가 그 기술의 명칭이

처음 사용한 선수의 이름이 남는다면,

피겨 스케이팅은 기술 하나하나 보다는

그 선수의 프로그램으로 기억됩니다.

 

피겨 스케이팅은

우수한 몇명이 힘을 합쳐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특출한 한명의 스케이터가 

자신의 시대를 기록하는 스포츠입니다.

인프라와 지원은 필수적이지만,

반짝이는 재능이 없이는 그리고 성장통을 이겨낼 수 없다면

아무리 엘리트 육성시스템이라도

비어 있는 마지막 한 조각을 채울수 없는 것이죠.

 

90년대 경제위기 속에서도 러시아를 떠나지 않았던 미쉰 코치는

러시아 피겨가 침체기일 때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며,

뛰어난 코치들이 있는 한 러시아의 피겨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재능있는 선수의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일지라도 챔피언으로 키울 수 있는 코치의 능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Maybe Russia doesn't have such rich stores of reserve like before,

but hope does not die. Russian skating will survive and thrive.

What the West does not understand is that you don't need so much 'talented skaters' as you need smart coaches.

A smart coach can find a good athlete and make him great.

In America, there are millions of talented athletes, but still they don't win top medals

because they don't know how to make the champions.

 

러시아는 예전과 같은 두터운 선수층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희망은 죽지 않았다. 러시아 스케이팅은 살아남아 번창할 것이다.

서방세계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영리한 코치들이 필요한만큼,

많은 재능있는 스케이터들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영리한 코치는 단 한명이라도 좋은 재능을 발견하면 그를 훌륭하게 키울수 있다.

미국에는 수백만의 재능있는 운동선수가 있지만 여전히 금메달을 따지 못한다.

어떻게 챔피언을 키우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출처: http://www.worldofquotes.com/author/Alexei+Mishin/1/index.html


이제 러시아는 해외로 떠났던 코치들이 돌아왔고,

여자 싱글에서 두터운 선수층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쉰 코치의 다짐처럼 암흑기를 생존하고 이제 번창하려 하고 있습니다.

매시즌 화수분처럼 러시아 신동들이 나오고 있죠.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코치들이 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 러시아 여싱 신동 리스트 (2014년 9월 16일 현재)

출처: http://www.fskate.ru/teams/russia/2014/  (영문구글 번역 링크) 위키피디아, ISU Bio

이름

생년월 

피겨시작

주니어 성적

훈련지

클럽

코치

 폴리나 셀레펜 95 / 7 2000  JGPF (09-2, 10-7, 11-6)  JW (10-4,11-7,12-6)  이스라엘  전클럽)CSKA 전코치)스베틀라나 소콜로브스카야.예테리 투트베리제
 안나 오브차로바 96 / 3  2000 09 JGPF (5) 10 JW (5)  스위스  전클럽)CSKA 전코치)스베틀라나 소콜로브스카야
 폴리나 아가포노바 96 / 4 2000  10 JW (3) 생 페테르스부르크 Olympic School 예브게니 루카비친, 전코치) 알렉세이 우르마노프 
 폴리나 코로베니코바 96 / 4  2000  11 JGPF (3) 12 JW (19)  모스크바 Yunost Moskvy 빅토리아 볼츠코바, 전코치)예테리 투트베리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96 / 7 2000 10 JGPF (1) 11 JW (1)   12 JW (3) 모스크바 CSKA 엘레나 보도레조바(부야노바), 일리나 타가레바
 엘리자베타 뚝따미셰바 96 / 12 2000 10 JGPF (2) 11 JW(2) 생 페테르스부르크 Yubileyny 알렉세이 미쉰, 타티아나 프로코피예프
 안나 포고릴라야 98 / 4 2002 12 JGPF (3)13 JW (3) 모스크바 Sambo 70  안나 차레바
 율리아 리프니츠카야 98 / 6 2002 11 JGPF (1)12 JW (1)   13 JW (2) 모스크바 Sambo 70  예테리 투트베리제, 세르게이 두다코프
 엘레나 라디오노바 99 /  1 2002 12 JGPF (1)13 JW (1)    14 JW (1) 모스크바 CSKA 인나 곤차렌코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 99 / 11 2002 13 JGPF (3) 14 JW (3) 모스크바 Sambo 70 예테리 투트베리제, 세르게이 두다코프

 세라피마 사하노비치

00 / 2  2007 13 JGPF (2) 14 JW (2) 모스크바 Sambo 70  예테리 투트베리제, 전코치) 알리나 피사렌코 
 마리아 소츠코바 00 / 4 2004 13 JGPF (1) 모스크바 Snow Leopards  스베틀라나 파노바
 알렉산드라 프로클로바 00 / 4 2004  13 JGPF (5)  모스크바 CSKA 인나 곤차렌코

* JGPF-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JW - 주니어 세계선수권

* 선수 및 코치 이름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영문 wikipedia 페이지가 뜹니다.


주니어 그랑프리, 주니어 월드 메달리스트 (2008~2014)

출처: 위키피디아

 

러시아 주니어 여자 피겨의 강세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가 제기되지 않습니다.

또한 시니어에 진출하는 신동들과 그들간의 내부 경쟁에 의해

이제 시니어 레벨에서도 러시아 여싱은 

국제무대에서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러시아 신동 1세대, 1.5세대, 2세대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니어 월드 참가권 3장을 놓고 격돌하게 됩니다.

이들중 한명은 내년 봄 상하이에 가지 못한다는 것이죠.

이런 상황을 예상한 신동 0.9세대 오브차로바, 셀레펜은 이미 각각 스위스와 이스라엘로 떠났습니다.

어려운 90년대를 고군분투하며 성장한 엘레나 레오노바 만이 신동들에 대항해 러시아에 홀로 남아 있습니다.

 (사진출처: 아이스네트워크)


하지만, 그것이 주니어 레벨에서처럼 시니어 탑 포디움의 스윕으로 갈지

그리고 그들중 누군가가 왜곡된 판정이 아니라 프로그램으로 기억되는

진정한 레전드로 기억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부호 혹은 칸을 비워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미쉰 코치가 미국의 피겨 스케이팅계에 했던 질문은

이제 러시아에 되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재능있는 스케이터의 숫자가 아닙니다.

과연 러시아 코치들은 새롭게 변한 피겨 스케이팅 환경에서

챔피언을 키우는 방법을 알고 있을까요?

 

어쩌면 그것은 역설적으로도 챔피언을 키우겠다는 마인드에서

벗어나야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최근 러시아 주니어들의 강세는 매시즌 선수들이 바뀌면서 계속되겠지만

정작 이들이 시니어로 갔을 때,

3+3 점프, 타노, 후반부 점프 몰아뛰기 등의 점수 수집 이외에

종합적인 스케이팅 스킬과 창의적인 마인드가 없이

얼마나 멋지게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3+3의 빠른 습득에만 치우치다 보니 

롱엣지와 부정확한 도약등의 잘못된 습관을 지니기도 쉽고,

고난이도 기술을 어린나이에 시도하는 만큼 

이들이 성장기를 지나며 부상을 당할 위험도 더 많습니다.

 

1964년생인 니나 모제르가 러시아 페어의 쓰러져가던 자존심을 

볼로소자/트란코프를 통해 되살렸듯이

모제르 코치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볼로소자/트란코프

 

어쩌면 러시아 여싱의 미래도

예테리 투트베리제일리아 아버부흐 같은

새로운 세대의 코치와 안무가에 달려있을지도 모릅니다.


2013 주니어 월드 포디움 스윕 후, 러시아 3인방과 새로운 세대의 코치들

아랫줄 왼쪽부터 괄호는 코치, 리프니츠카야 (예테리 투트베리제), 라디오노바(이나 곤차렌코), 포고릴라야(안나 차레바)


지난 시즌 호평받은 리프니츠카야의 "쉰들러 리스트" 프로그램도 

본인의 선곡 의지를 관철시킨 리프니츠카야의 개성과 고집,

그리고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결국 스케이터의 의견을 받아들여 좋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준 

뚜르베리제아버부흐의 열린 자세 때문이었다는 것은 시사해 주는 바가 많습니다.

이것은 권위적인 도제 시스템으로 유명한 

이전 세대 러시아 코치와 안무가들과는 사뭇 다른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프리 경기 전의 리프니츠카야와 코치 투트베리제

리프니츠카야와 안무가 일리아 아버부흐

2013 스케이트 캐나다 리프니츠카야 FS 쉰들러 리스트, 

직관했던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주변의 관중들은 리프니츠카야가 링크에 등장하자마자 

낮은 탄성을 터뜨리며 영화 속의 빨간 코트 소녀를 떠올리더군요.

유튜브 유저가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컨셉으로 흑백으로 전환한 영상입니다.

 

또한 여싱 최초로 주니어 월드를 2연패한

엘레나 라디오노바는 똘기 넘치는 일명 "좀비 갈라"를 통해 

점핑 머신이 아님을 보여주 듯 끼를 발산하며

지난 시즌 피겨팬들의 귀여움을 받은바 있죠.

 

 

하지만, 이번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를 보면

러시아 주니어들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신동 1세대와 달리 좀더 자신만의 개성을 가져나가는 것 같던 이른바

러시아 신동 2세대 중 

사하노비치, 메데브데바의 프로그램이 주니어 그랑프리를 통해 공개된 지금

그들은 왠지 모르게 자신들의 장점과 개성들을 많이 잃어버리고,

후반부 가산점, 3+3 점프, 타노점프로 대표되는

획일화된 전략과 안무로,

찍어낸 생산품 마냥 비슷해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요.

그 와중에서 그들의 불안한 점프자세와 엣지도

어텐션 마크로 가릴수록 더욱 드러나 보였습니다.


예브게니 메데브데바 FS 2014 JGP Courchevel


세라피마 사하노비치 FS 2014 JGP Courchevel


사하노비치메데브데바의 프로그램을 본후

이제 5차 부터 주니어 그랑프리에 출전할 

소츠코바, 프로클로바의 프로그램들이 여전히 궁금하면서도

시즌 초만큼 기대가 많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동안 서로 경쟁하며 건전한 견제를 통해 다양성을 유지하던

생 페테르스부르크와 모스크바의 팽팽했던 피겨 라이벌리가

최근 생 페테르스부르크의 침체로 약화되고

모스크바로 피겨의 동력이 집중되는 것도

그 암울한 시작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지난 시즌까지 그 나이에 찾아보기 힘든

우아한 스케이팅과 프로그램을 자랑하던 사하노비치

지난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의 프리 프로그램입니다.


이번 봄, 생 페테르스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훈련지를 옮기고 코치를 바꾼 후 급작스럽게 변화된 모습이

그 우울한 전주곡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역설적으로도 사하노비치의 새로운 코치이자 안무가는 

바로 앞에서 리프니츠카야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며 언급했던 

러시아 신세대 코치의 대명사 예테리 투트베리제입니다.

 

90년대 중후반 떠오르던 많은 러시아 주니어 여싱중

결국 레전드가 된 것은

첫 주니어 월드에서 포디움에 오르지도 못하고,

화려한 제자들을 자랑하는 유명 코치의 스케이터도 아닌

 

당시에는 유명하지 않던 자나 글로모바 코치에 의해 발굴되어

그 코치와 커리어를 끝까지 함께 했던,

그리고 첫 주니어 월드에서 8위라는 성적을 기록했던

이리나 슬루츠카야였습니다.

 

90년대 중후반의 그 어려웠던 시절을 이겨냈던,

이리나 슬루츠카야 세대와 달리 

이들 풍요로운 신동의 세대에 대해서는

 

결국 몇년이 흐른 뒤,

"(러시아 주니어 피겨는 강함에도) 러시아 시니어 여싱은 왜 빛나지 못할까?"

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심판들에 의해 만들어진 우승자가 아닌

진정한 여싱 레전드가 러시아에서 탄생하게 될 지는...

 

이 잔혹한 스포츠에서는

결국

시간이 증명해주겠죠.

 

ps.

어쩌다 보니

러시아 피겨계의 최근 흥망성쇠를 정리하는

포스팅이 되었는데요.


결국 피겨 스케이팅은

링크라는 시설과 코칭 스탭 그리고 스케이터라는

세 축으로 움직이는 듯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환호와 성원을 보내는 팬들의 존재가

자그마하나마 힘이 될수 있겠죠.


한국의 피겨계는 어떻게 될까요?


한국 피겨의 문제는 좀더 복잡합니다.

김연아 선수 신드롬으로

피겨에 입문한 김연아 키드로 인해

최근 폭발적으로 선수층이 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많은 피겨 선수들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요?


저변 확대의 과실을 수확하는 첫 세대인

지금 은퇴하는 탑선수들은 현역 은퇴와 함께

대부분 모두 코치로 활동할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의 저변확대 세대의 스케이터들이 은퇴할

10년 뒤에도 과연 그럴까요?


한국사회의 압축성장의 빛과 그림자를 

(ex. 세대간 착취, 비자립적 해외의존 경제, 무한경쟁, 부익부 빈익빈, 승자독식, 복지 안전망 부재 등등)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몇년안에

고스란히 보여줄 것만 같은 한국 피겨계


관련해서 언젠가 포스팅할 기회가 있겠죠...


위에서 잠간 소개했던 

KBS 시사기획 창 "한국 피겨, 김연아 이후를 말하다"를 

링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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