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달, 제 블로그에 놀러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포스팅 업데이트도 매우 느리고,
그나마도 대회결과 순위 혹은 영상이 없는 채로
덩그라니 올리고 있었는데요.
자주 오시는 분들이 헛걸음 하시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공지를 띄우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겨는 언어다" 블로그를 쉽니다.
이전에도 쉬려고 하다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로
몇번씩 블로그에 강제 소환된 적이 있는데요.
이번에는 좀 오래 쉬려고 해요.
빨라야 16/17 시즌 아니면 그 이후에나 올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오겠죠.
인사말을 따로 쓰려고 하다가,
3년 전에 그러니까 2012년 여름에 올린 포스팅을 링크해봤어요.
제가 블로그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올린 글입니다.
항상 첫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음악,
그리고 지금 이 곳에 있게된 일들에 대한 포스팅이었어요.
여러분들 항상 건강하시고,
그동안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내다보면 또 만날 날이 있겠죠...
다음 시즌도 즐감하시고...
피겨는 계속됩니다.
꾸벅~~~
2015년 4월 22일
스파이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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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갑자기 막막해져서 앞으로 갈 길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게 어쩌면 큰 일이 아닐 수도 있고, 나중에 돌이켜 보면 아주 작은 인생의 갈림길 일지라도
그 때는 그러한 것을 잘 알지 못 할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쩌면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죠....
그건 그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정말 혼자서만 가야할 길이라는 것이 인생에는 몇번 정도는 틀림없이 있기 때문입니다.
몇 년전 제가 그러한 갈림길에 있을 때
TV에서 본 광고의 배경음악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서야 언젠가 들었던 팝송이 떠올랐고,
힘들었던 갈림길은 언제나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와중에도 빛나던 기억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런 것들이 되풀이 된다는 것은 그 만큼 암울하고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이 조금씩 쌓여서 지금의 내가 서 있는 것처럼
언젠가
다시 지금을 돌아볼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그 다음부터 조금씩 나가게 되었습니다.
앞에 막혀있던 벽이 조금씩 열리는 느낌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서있지 않나...기회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 그 순간, 새로운 여정이 열렸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저 자신한테 실망하거나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이 노래를 듣고는 합니다.
오늘 소개할 피겨쥬크박스 네번째 음악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3악장입니다.
2009년 대한항공은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광고를 런칭했습니다.
한효주, 하석진, 이완이 각각 미국의 동부, 중서부, 서부를 배낭 여행하는 컨셉으로 영상을 찍었는데요.
특히 이 광고의 이완 편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이 계속 변주되면서 쓰였습니다.
이 시리즈 광고들은 제가 TV를 틀 때마다 매번 나왔습니다.
혹은 그 당시의 저는 하나하나 그 광고들을 놓칠 수 없었겠지요.
"미국 어디까기 가봤니?" - 한니발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 와메고
당시 미국은 저에게 언젠가 배낭여행을 갈 수 있는 낭만적인 그런 곳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미국은 몇년 동안 준비한 유학의 결과를 기다리는 현실적인 공간이었죠.
사실 그 광고에 나오는 와메고, 한니발 같은 미국 구석구석을 찾아갈 수 있는 한국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오래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준비했던,
미국 전역에 제출했던 대학원 입학원서가
1년전, 모두 불합격 통지서로 쌓여 돌아온 적이 있었기에,
그리고 이미 나이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저 자신에게도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지만, 어느새 라흐마니노프의 그 선율은
제 머리속에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 산타페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 페인티드 데저트
1년전 어플라이에서 실패한 후 결국 재취업한 회사에서 야근이 끝나고 돌아오면,
혹시나 하고 우편함에 꽂힌 국제메일들을 가지고 집에 올라가서
하나하나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허한 마음에 TV를 틀면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광고가 나오고
씁쓸하게 웃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미국 전역에서 온 불합격 메일들이 쌓여 왔지만,
저는 계속해서 몇 통 남은 메일을 기다렸습니다.
"어차피 학교든 직장이든 한번에 붙었던 적은 없었쟎아."
제가 이 선율을 처음 접한 것은
재수 학원에서였습니다.
처음 재수생활은 즐겁지 않았습니다.
제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 저 혼자만 대학을 떨어졌거든요.
조용히 학원을 다니고 있던 몇 주후,
자습시간에 제 옆에 우연히 앉았던 거구의 친구가 말을 걸었습니다.
"너 이 가수 노래 아니?"
그리고는 워크맨 이어폰 한쪽을 나누어 줬습니다.
이른바 히트곡 모음집이었죠.
그러다 어느 한 노래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이 노래 제목이 뭐야?"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
"그렇구나...누가 불렀다고 했지?"
"에릭 카르멘. 가수가 직접 만든 곡인데,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했데"
"...노래 좋다...원래 클래식 음악이라고?"
"어...라흐마니노프였던거 같애"
어느새 노래가 끝났고...이어폰 한 쪽을 돌려받으며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애들하고 영화보러 갈 건데, 너도 같이 갈래?"
그 후 우리는 종로 영화관과 음반 가게를 몰려 다녔습니다.
덕분에 모두 원하던 학교와 학과에 못들어갔지만,
서울 변두리에 살았던 저에게
그 친구들과 종로의 영화관과 분식점 그리고 학원에서 들었던 팝송의 선율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10년도 훨씬 더 된 그 때를 기억하고, 그리고 다시 1주일이 흐른 후,
대한항공 광고가 조금씩 뜸해질 때 정도,
결국,
마지막으로 기다렸던 대학에서
거절 메일이 왔습니다.
그날 밤,
또 다른 길이 있겠지...하면서
최선을 다했으니까...하면서
이제 다른 길을 생각해야겠구나...하고
아쉬움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아침 업무를 시작하려고
회사에서 이메일을 열어보았습니다.
그 순간,
익숙한 주소로 부터 도착한 하나의 이메일...
제 입학수속을 대행했던 장학재단이
1달 전에 온 이메일을 지나치고
저에게 보내지 않았던
합격메일이었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제 미국 생활의 시작이 되었죠.
미국에 오자마자,
벽에 한국에서 가져온 커다란 미국지도를 걸어놓았습니다.
"어디서부터 갈 수 있을까?"
운이 좋게도 세미나와 비행기 트랜스퍼 등의 기회로 그 광고에 나왔던 몇몇 도시도 가볼 수 있었어요.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 아이리시 커피
샌프란시스코 - Pier 39
물론 여행지의 미국인들은 예상했듯이 광고에서 나오는 사람들처럼,
동양에서 온 이방인에게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혼자 여행다니는 법을 배우게 되었죠.
가끔씩은 유스호스텔에서 혼자 여행온 사람들을 만나서 친구가 되기도 했어요.
..........
힘든일이 있으면 지금도 가끔 그 때를 생각합니다.
4월 어느날 아침, 마지막 합격 이메일을 열어보기 전의 그 마음가짐...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은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이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과 비교할 때
많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다소 외로운 곡이죠.
원곡에서는 강조점이 없어서 점프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짧지만 다양한 장르의 편곡을 보여준
위의 광고 음악들을 참조하면
피겨 프로그램에 어울리는 멋진 편곡을 뽑아 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프리 프로그램으로 좋을 것 같은데요.
부드러운 중간 안무들과 더불어
이나 바우어가 들어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특히 어떤 스파이럴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가
특색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관건 일 것 같습니다.
페어 프로그램으로 쓰이는 것도 보고 싶습니다.
우아한 프로그램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마침 지난번 아댄 육성팀 선발전에 출전했던 몇몇 선수가
페어에 관심있다는 이야기도 들리구요.
지난 여름방학, 한국에 갔더니,
제가 다니던 종로의 극장들은 멀티플렉스 체인에 밀려 문을 닫았고,
음반가게는 사라진지 오래더군요.
하지만 저는 종로를 떠나 태릉의 링크장에서 주니어 선발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직관으로 본 컴피였습니다.
다음주 까지 내야할 리포트 2개가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잠 자고 또 모니터를 켜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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