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배낭 여행을 갔을 때 처음 집시들을 봤습니다.

집시들에게 관광지에서 소매치기 당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집시들을 보면 피해서 빨리 걸어가고는 했지요.


그렇게 여행을 다니면서,

몇시간 동안 갑자기 내린 비를 맞고 걸어다니고 나니

사실 제 모습도 그리 깔끔하지는 않아졌습니다.

다른 유럽인들의 나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저의 집시에 대한 경계심도 많이 사라졌죠.

어쩌다보니 저나 집시들이나 그다지 행색이 차이가 나지 않기 시작했으니까요.


사진출처: http://gosotopo.tistory.com/269


관광지 분수 앞에 걸터 앉아 있는데, 

어느새 내 앞에서 한 집시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손을 흔들자, 그 아이는 수줍게 웃으며

분수대 너머로 달려갔습니다.


http://www.trekearth.com/gallery/figenya/photo1101566.htm

(인터넷에서 발견한 터키의) 집시 아이들 사진, 

http://www.trekearth.com/gallery/Middle_East/Turkey/photo1101210.htm


그것이 집시와 처음으로 나눈 일종의 "대화"였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들이 지하철 역등에서

연주하거나 춤을 추면 잠시 멈춰서서 보고는 했죠.


오페라 카르멘의 주인공이 집시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그 이후에야 다시 깨닫게 되었어요.

왠지 모르지만 

한동안 주인공인 카르멘이 

유럽의 한 민족의 여성이려니 생각 했던것 같아요.

저는 오페라에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제가 처음 접한 카르멘은

오페라도 발레도 아닌

바로 "카타니라 비트"의 피겨 스케이팅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카르멘이 피부가 하얀 백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출처: AP Photo/Rudi Blaha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오페라에 문외한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 저 역시 집시들을 "없는 존재"로 생각하고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수도 있지요.


나중에야 집시들의 역사를 알게 되었어요.

그들이 유럽 전역을 그 오랜 세월동안 떠돌아다니는 이유는

어떠한 국가에서도 그들에게 교육도 권리도 땅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차 대전 중 유태인 못지 않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나찌의 강제수용소에서 죽었지만,

아무도 집시들의 죽음을 기억해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집시들은 유럽에서 가장 힘든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청소와 막노동...그리고 아무도 그들을 받아들여주지 않기 때문에 도박과 밀수등을 하고 있죠.


카르멘은 그러한 집시들의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오페라였습니다.

1820년경 가장 힘든 작업장 중의 하나인

스페인의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집시여공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

카르멘이 단순히 정열적인 무용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저의 생각은 역시

그냥 낭만화에 불과한 것이었죠...

사실 만약 "카르멘"이 그렇게 안이한 작품이라면 지금까지 살아남았을리가 없었겠죠.


출처: http://www.musicweb-international.com/SandH/2008/Jan-Jun08/Carmen2503.htm


어두운 하층민 집시들을 다루면서도

도발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오페라.

그래서 "카르멘"은 파리의 중산층이 주관객이었던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 당시 흥행에서 실패합니다.


(출처: http://www.thesun.co.uk/sol/homepage/features/2597130/Sun-brings-you-tickets-to-see-Carmen-opera-for-750.html)


흥행에 실패해 상심한

작곡가 비제는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수영을 하다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마치 뮤지컬 "렌트" (Rent)의 작곡가이자 연출가 조나단 라르슨(Jonathan Larson)이

뉴욕에서의 첫 공연 전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고,

그 "렌트"가 전설로 남은 것처럼


뮤지컬 렌트 중 "라비 보엠 (La Vie Boheme) Bohemianism은 프랑스어로 집시를 일컷는 bohémien 에서 유래되었다.

뮤지컬 렌트는 오페라 La Bohême의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뮤지컬 렌트의 한장면 "라 보엠" http://www.rentmusical.net/history


"카르멘"도 다른 나라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파리에서 다시 공연하게 되고,

지금까지 오페라 역사에 빛나는 전설로 남게 됩니다.


집시의 노래 Gypsy Song

Opera


그리고 피겨 스케이팅에서도 

카르멘은 또 하나의 전설로 태어나게 됩니다.

Carmen on Ice


오늘의 피겨 쥬크박스

"카르멘"입니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카르멘은 하도 끓여대서

이제 뼈의 형채도 알 수 없게 된

사골중의 사골곡입니다.


지난 시즌 

아이스 댄스팀 테사 버츄 / 스캇 모이어 그리고 안나 카펠리니/ 루카 라노테팀이

카르멘을 사용한다고 하여 이 사골곡은 또(!)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요.

관련포스팅: 버츄/모이어 새 프로그램은 카르멘? 슈필반트 vs 쥬에바 "카르멘의 전쟁" 시작

 

우연인지 아니면 매번 그래왔는지 시즌이 개막하기 전 펼쳐지는 섬머 컴피티션

스케이트 디트로이트에서도 주니어와 시니어에서

골고루 카르멘을 사용하더군요.


자유롭고 매력적인 담배공장 노동자 집시여인

카르멘

고향에 약혼녀를 놓고온 진지하고 보수적인 스페인 하사관

돈 호세

그리고 용맹하고 열정적인 투우사

에스카미요



이들이 서로에게 집착하고 배신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비극적인 삼각관계가

카르멘의 주요 내러티브입니다.


데이트 장소로 오페라 극장을 찾던 파리의 선남선녀들이 주요관객이던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환영받았을리가 없었지요.


음악과 오페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의 링크로 대신하고....


카르멘 이야기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860


비제이야기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997




다시 피겨 스케이팅 이야기로 돌아와서

카르멘을 피겨 스케이팅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한

1988년 캘거리 올림픽에서의 여자 싱글 경기 

바로 

카르멘의 전쟁 (The Battle of the Carmens)을 다뤄보기로 하겠습니다.


올림픽 2연속 금메달을 노리는 동독의 카타리나 비트

그리고 1984년 사라예보 올림픽 이후 세계선수권에서 비트를 꺾은 유일한 스케이터

1986 월드 우승자 미국의 데비 토마스의 대결은 

이들이 카르멘을 올림픽 시즌의 프리 프로그램으로 동시에 선택하면서

더욱더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들의 대결을 미디어들은

"카르멘의 전쟁" The Battle of the Carmens 이라고 이름 붙였죠.


남자 싱글의 두 라이벌

브라이언 보이타노와 브라이언 오서의 대결을 지칭한 

"브라이언의 전쟁" The Battle of the Brians도 

캘거리 올림픽의 화제였지만,

역시 "카르멘의 전쟁"이 가장 큰 화제였습니다.


여자 싱글 프리의 순서는 

카타리나 비트, 엘리자베스 맨리, 그리고 데비 토마스가 마지막이었습니다.

프리 경기전 컴퍼서리와 쇼트를 합친 경기 결과는 

데비 토마스가 1위, 카타리나 비트가 2위였습니다.


카타리나 비트 Katarina Witt FS "카르멘"1988 캘거리 올림픽

CBS (미국)


일본 방송


프리 + 키스 앤 크라이 인터뷰 (CBS)


엘리자베스 맨리 Elizabeth Manley FS + 키스앤 크라이 1988 캘거리 올림픽


데비 토마스 Debi Thomas FS "카르멘" + 키스앤 크라이 인터뷰 1988 캘거리 올림픽 


결국 카타리나 비트는 엘리자베스 멘리 (캐나다)와 데비 토마스를 제치고

소냐 헤니 이후 최초로 올림픽을 2연속으로 제패한 여자 싱글 선수가 됩니다.

데미 토마스는 엘리자베스 멘리에게도 밀려 동메달에 그치고 맙니다.


올림픽 공식 기록 영화 (카타리나 비트 경기 영상 부분 및 시상식)


1988 캘거리 올림픽 여자 싱글 시상식


카타리나 비트 소냐 헤니 이후 첫 올림픽 2연속 챔피언이 되다


1988년 올림픽에서의 카타니라 비트의

프리 프로그램은 너무나 강렬해서,

그 후 영화로도 만들어집니다.


모든 장면을 은반 위에서 스케이트를 신고 찍은

"카르멘 온 아이스"의

주연은

카타리나 비트, 브라이언 보이타노 그리고 브라이언 오서입니다.


카르멘은 카타리나 비트일테고,

누가 잘생기고 진지한 스페인 군인이고, 누가 열정적이고 용맹한 투우사일까요? ^^:


카르멘 오페라의 장면과

카타리나 비트가 주연한 아이스 오페라의 장면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듯 합니다.


서곡 Overture

Opera

Carmen on Ice


아바네라 (Habanera)

Opera

Carmen on Ice



Seguedille

Opera


Carmen on Ice



Act 2 카르멘의 입장

Carmen on Ice


투우사의 노래

Opera

Carmen on Ice


꽃노래

Opera

Carmen on Ice


Finale of Carmen

Opera

Carmen on Ice



이 후 다른 스케이터들에 의해 다시 공연되기도 했지만,

Carmen on Ice 


카르멘 온 아이스는 카타리나 비트의 영화로만 기억되었고,


그녀의 프리 프로그램은 그녀 자신에게도 시그니처 프로그램으로 남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피겨 스케이팅 팬들에게

카르멘은 곧 카타니라 비트였고, 카타리나 비트는 곧 카르멘이었습니다.


Katarina Witt & Uwe Hassbecker - Carmen


카타니라 비트 이후의 많은 스케이터들이

카르멘을 시도했지만, 

이들의 프로그램들은 

카타리나 비트의 "그 카르멘"에 대한 

오마주 혹은 몽타주이자 각주였습니다.


Katarina Witt & Evgeni Plushenko - Carmen Duet montage


part 2에서는 카타니라 비트의 카르멘 이후 

본격적으로 사골곡이 된 카르멘의 여러 프로그램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카르멘 Part 2: 사골곡의 탄생  


그리고 part3 에서는 지난 시즌의

"신" 카르멘의 전쟁에 대해서 다뤄 볼 예정입니다.

카르멘 Part 3: 신 카르멘의 전쟁 혹은 새로운 카르멘의 탄생


사실은 part 1과 part2는 지난 시즌이 시작되기 전

카르멘을 버츄/모이어, 카펠리니/라노테 팀이 프리로 선택하면서

쓰기 시작했던 포스팅입니다.


그러니까 2012년 7월 21일에 시작했던 포스팅입니다.

조금 더 보완해서 올린다는게 결국 1년이 지나서 올리네요...


이렇게 나마 늦게 올리는 이유는...

...


하여간 

올리면서 보니까 요즘 쓴 것 같네요..

1년 정도 지났다 해도 카타리나 비트와 카르멘의 위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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