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모스크바 피겨 세계선수권 여싱 본선이 열리기 바로 전날인
2011년 4월 29일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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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벌써 1년도 더 되었네.

작년 2월은 내가 처음으로 미국에서 보낸 겨울이었어.


다들 알겠지만,

유학생활이란게 사실

참 외롭거든.


돈 안벌고 늦은 나이에 공부하면서,

복터진 투정이기는 하지만…


내가 제일 힘들었던 것은 역시 영어였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면

처음에는 좀 shy 한가(부끄러움을 많이 타나) 보다 생각하지만,

2번째 시간, 3번째 시간이 지나도 한마디도 안하면

그냥 바보 취급을 당해.


투명인간 (Invisible person)이 되는 거야.


그냥 내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

같이 수업을 들어도 잘 아는 척도 안하게 되지.

첫학기는 첫학기니까 하고 그냥 버텨도,

둘째 학기도 그러면 정말 참기 힘들겠더라고…

두번째 학기가 다시 시작되었고,

나는 내가 바보가 아님을 증명하려 사투를 벌였지.


첫시간 전날 밤에 잠도 안자고, 밤새 준비했지만,


결국 수업시간에 단어는 내 입 안에서만 맴돌았어.


무시를 당하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면

2008년 세계 선수권 대회 프리 "미스 사이공"을 보고, 

키스앤 크라이 존에서의 연아의 모습을 봤어.



연아에 비하면…

“이거 별거 아니쟎아? 그렇지?”


첫번째 발표를 위해 그날부터 며칠동안

밤을 세워가며 발표 대본을 만들고

통째로 다 외워갔지.


그리고

그 다음주 나는 처음으로 프레젠테이션에서

동료학생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어.

You did good job. I like your presentation.


어느새

밴쿠버 올림픽이 시작되고,

어느날 같은 클래스의 한국애들끼리

어제 쇼트경기를 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같은 클래스의 미국애가 이야기에 끼어들더라고,

수업이 시작된지 한달이 지났지만, 그 때가 처음이었어.

미국애가 이야기에 끼어든 것은.


딱 한마디 하더군

She was great!


프리는 기숙사에서 혼자 보기로 했어.

글쎄…왜 그랬을까






거쉰이 끝났을 때 연아의 얼굴이 줌인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눈물을 흘리며 TV를 바라보고 있었지.

한국에서 떠나서 처음으로 우는데, 눈물이 그치지 않더군.

그러고 나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더라.



다음날 Student Union에 갔더니 무료 신문 배포함에

USA Today 1면에 연아 사진이 걸려 있었어.

“Golden Grace on Ice.”




놀이공원에서 훈련하며

강대국 피겨 선수들 틈에서 여기까지 성취해온

그 자그마한 연아의 커다란 1면 사진을

학생식당에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씹으면서

계속 바라봤어.


사진기를 꺼내 찍으며

계속 되뇌었지.

“연아야 참 고맙다.”




쇼트가 끝난 후 이야기를 걸었던

그 미국친구가 다음주 나를 보고 먼저 인사를 하더군.


Congratulation. Last week must be so great for you!


그랬지, 대단한 한 주였어.


그 후에도 나는 여러번  프레젠테이션을 망쳤지만,

그 때마다 밴쿠버 프리 거쉰을 돌려보고는 했어.




이제 4학기 째,

이번 주에도 성공적인 프리젠테이션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수업이 끝나고

클래스 메이트들을 보면서 싱긋 웃을 수 있게 되었어.




그리고 이제 내일 아침에

드디어 1년 1개월 만에 연아가

“지젤” 그리고 “오마쥬 투 코리아”와 함께 돌아온다.


내일 그리고 모레,

연아가 아주 행복하게

스케이트를 탔으면 좋겠어.


-연아의 세계선수권 복귀를 하루 앞두고 스파이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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